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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상가집에서 고인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꿈결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둘째 작은어머니의 죽음으로 뜻하지 않게 대전에서 온 가족이 모였다. 아버지의 죽음이후 처음 다시 모인 우리 가족들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였다.

그렇게 어리고 어렸던 사촌동생들이 이제는 다 성장하여 어엿한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나니 감회가 무량하다.

 

늙은 노모를 선희가 마지막까지 효행을 하였다니 참 고맙고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내가 가장 힘들 때면 찾아 갔던 아버지가 이제는 세상에 없다는 것 그리고 나의 불효로 인한 자괴감이 밀려 온다. 아버지의 실종 그리고 그 이후 내가 다가왔던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평안함. 아버지의 업보가 우리 가족을 누르고 있었던 부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 미국에 사는 언니가 전화가 왔다.

상종 못한 것들이라는 원색적인 질타가 들려 왔다. 사실이다.

아마도 내가 잘못한 일은 평생에 남은 것이다. 내 십자가에 무게가 하나 더 늘은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영도 육도 가벼워져야 하는 것이 순리일텐데, 내 어리석음으로 십자가는 무거워지고 있다. 서울 상경 전에 큰오라비가 작은 오라비를 고창에서 해후한 것이 큰 소득이다. 이제 이 두사람도 허물을 서로 보듬어 안고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어릴 적 티걱태걱하면서도 사이좋은 형제였던 그 시절처럼 늙으면서 아우님, 형님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서로 기대며 살아 주기를 기도해 본다.

 

나는 벗이 많지는 않지만 내 벗들은 참 효심이 좋아서 늘 내가 부끄럽고 고마운 생각이 든다. 내 벗들의 삶이 나를 늘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은 오월을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니 "그래, 참 잘했고나!", "부럽다"라고 말을 한다. 최근 어느 집이나 형제간의 갈등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정도의 차가 있지만 감정 때문에, 건강 때문에, 돈 때문에 등등 한 형제 자매들이 서로의 갈등과 불복이 있다.

 

가난하여 한 방안에서 한 이불을 덮고 살았던 우리가 이제는 넓은 집에 각각의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70, 80 세대들은 추억의 낭만과 빠른 세상의 배금주의에 타협하여 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졸부, 강남 그리고 가족의 해체, 고독, 불면증, 거식증, 우울증 등등 주변 가까이에 쉽게 만나는 이야기 들이다.

그러기에 나는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리고 그나마 종교생활을 통해 덜 오염되었다는 위로를 해 본다.

 

내 벗들 중 유명인사가 없어도, 내 벗들 중에 부자가 없어도 나는 행복하다.

오히려 요란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라서 가볍게 전화를 걸어 만날 수 있고, 만남 이후에도 잔잔한 여운이 남는 사람들이라서 나는 참 좋다.

가족도 가족이지만 같은 생각과 같은 세상을 살아온 동 시대인으로 친구 만큼 큰 재산은 없는 것 같다. 치매노인을 모시는 친구, 오라비가 있어도 딸이 어머니를 모시는 친구가 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아들 딸 누구든 부모를 모셔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참 고맙고 상을 주어야 할 것 같다.

 

곱고 고왔던 소녀같은 내 사촌동생 선희가 나 보다 등치도 커지고, 두둑한 중년의 여인이 되었지만 나는 작은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면 간병을 해 준 그 효심에 감사하고 있다. 작은 어머니는 참 음식도 잘하시고, 웃을 때 눈 웃음이 참 고왔던 분이다. 내가 종교를 잘 모르는 어린시절에도 작은 어머니는 돌아가신 고모 할머니를 모시고 성당을 다니셨다. 인고의 세월을 살다 가신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작은 어머니 덕에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작은 응어리조차 무색하게 만들어 주심에 감사드리고 싶다.

오래 전 세째 작은 어머니의 칠순에 인사를 드렸을때 "몸 건강해야지!"라며 내 어깨를 토닥여 주셨는데 나는 상가 집에서 그 분의 선한 미소를 만나면서 짧은 기도를 올렸다. "작은 어머니, 하늘나라에서는 더 행복하시고, 모든 근심을 내려 놓으세요."

"아마도 남은 가족 모두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제 잘 살것입니다." 작은 어머니의 덕으로 우리 가족이 다 만나서 육계장을 먹는다. 같이되고 하나가 되는 순간.

이것이 상가집의 풍경이었음을 새삼 깨닫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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