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투병일기

살아가는 동안 바로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일지도 몰라

나의 천형일까?

 알수 없는 슬픔이 내 안에 살고 있다. 아마도 나를 복중에 잉태하고 있던 엄마가 아버지로부터 애정을 상실한 그 순간의 마음의 상처였을까? 아니면 내 전 전생의 업보가 살아서 내 현재의 삶에서 살아 숨쉬기 때문일까?

 

해마다 봄이 되면 나는 참 슬프고 우울하다는 느낌이 인다. 그냥 막 피어 오르는 꽃을 보면 그 곱고 고운 자태에 애잔함을 느낀다. 모든 생명체는 모두 아픔 속에 피어난다.

가끔 동물의 왕국을 보면 새 생명은 인고의 통증과 더불어 태어남을 알 수 있다.

 

아프고 아프고 아퍼도 새 생명의 생명감은 놀랍고 놀랍다.

나는 자주 기도를 한다.

나의 삶이 이생에서만 존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한다. 또 다른 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나에게 천형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나는 요즘 같은 봄날이 시작하는 목련이 필 때쯤 죽을 것이라는 예감이 있다. 아마도 전생에 요맘때 죽었는지

나는 요맘때 참 씁쓸하고 우울하다.

그래서 이런 계절엔 나는 친구들에게 안하던 전화도 하고 불러 내어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그래야 내 이런 묘한 기분을 툭툭 떨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마음 먹기 달렸는지 연말 연초 "힘들다 .", "힘들다."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래 그냥, 그래"라고 생각하고 현실을 받아 들이니 조금 난 것 같다. 똑 같은 상황인데 마음 자리 한번 바꾸니 그저 아무런 일도 아닌 생각이 든다.

저녁시간 기업 사보들의 화보를 본다.

 

화려한 웃음의 성공한 사람,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 그리고 정말 보기 조차 싫은 현대백화점의 신문 광고처럼 혐오스런 모델의 얼굴을 닮은 조금 역겨운 광고들을 본다. 가끔은 활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이 참 안된다. 유일하게 TV를 볼때나 넋을 빼고 볼까? 무언가 읽을 거리가 있어야 마음이 편안하다.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은 나의 유일한 친구인지도 모른다.

세상 소식이 궁금한 걸까? 아니면 매일 매일의 해프닝을 즐기는 걸까?

봄날, 하루하루 꽃 망울의 크기가 달라진다. 아침 일찍 본 꽃과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본 그 꽃은 또 달라있다. 마치 소녀에서 처녀가 변신하는 여자의 모습과도 같다.

예쁘게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의 청춘을 기억해 본다.

가난하기에 행복했던 그 시절,

갖지 못하였기에 굶주려 갈망했넌 그 시절,

아직도 내일 일을 모르기에 행복했던 그 시절,

그 아픈 청춘의 시절이 그리운 봄날이다.

 

어디선가 그리고 내 주변에서 그 아린 청춘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나는 오늘 그대의 그 청춘이 몹시도 사랑스럽구려"라고 말해 주고 싶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