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은 마음 편히 쉼이 있는 곳이 맛집이다. 지나치게 사람이 많고, 너무 독특한 음식이 아니라 그냥 그 음식을 먹으며 나눈 대화와 내 마음이 쉼이 좋은 곳이 맛집이다. 많은 인플루언스들이 말하는 곳이 다 맛집이라면 세상은 너무 좋은 세상일지 모른다. 제 아무리 좋은 곳도 내가 편안하지 않다면 그곳은 나와 맞지 않는 곳이다. 오랜 밥집이나 사람 냄새가 머무는 선창가의 대폿집, 산속 깊은 곳에서 만난 소박한 김장독에서 거네 숭숭 썰어서 담백하게 끓여 낸 김칫국 나는 이런 음식을 맛집이라 생각한다. 도시의 음식은 승냥이 떼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음식이다.
연말이 되었다. 여기저기 음식을 먹으며 마음을 나눌 때마다 사람과 음식과 그리고 추억이 있는 공간들이 서로의 입에서 회자된다. 가성비, 분위기, 청결, 친절 등의 척도가 있지만 그 많은 평가치에 없는 것이 있다. 소수의 사람이 알려주지 않는 그런 집이 모두에게 있다. 아마도 숲 속 오솔길 같은 집이다. 백 년이 되어도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살아 있는 곳, 그 장소에서 정을 나눈 사람들의 맛집이다. 나는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인으로 산지 육십 년이 되었다. 나이를 먹으니 점잖고 조용하고 값이 부담되는 대형 음식점에 불려 나가는 일이 많다. 그런데 한 끼를 화려하게 먹고 나올 때마다 솔직히 입은 즐거웠지만 마음은 허텃하다.
나는 생리적으로 소박한 음식이 좋다. 한 끼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들여 먹는 음식을 먹고 유명 카페를 방문하는 요즘 소비 패턴을 따를 수 밖에는 없다. 그래도 나는 촌스러운 내 입맛 탓에 영혼의 배고픔이 있다. 밥은 기본이지만 밥이 다는 아니기 때문이다. 올해 내 영혼을 달래준 음식은 며느리의 정성스러운 생일상과 동네 친구 은희가 차려 준 음식아 가장 정스럽고 맛있는 음식이었다. 예전에 집밥을 고집하던 시아버지가 정말 싫었다. 그런데 그분의 나이쯤이 되어 보니 정성으로 차린 음식에 감동을 느낀다. 맛있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의 재주에 질투가 난다. 만약 내게 그런 재주가 있다면 더 많이 나눌 것 같다. 음식 솜씨가 있는 사람은 축복이다. 사람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은 원초적인 본능을 쓰다 듬는 행위다. 고독한 영혼에 위로의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이 맛집이다. 맛집은 야생이고 고수의 솜씨다. 산사의 미역국에 단무지 2쪽이 주는 위로. 배를 채우기 위해 사냥을 떠난 원시인이나 도심을 배회하는 사람들이나 똑같다.
도심에서 사는 나는 퓨전 한식이 싫다. 서양식도 한식도 아닌 음식을 그림처럼 제시한다. 마치 일본음식의 복사판 같아 간지럽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 내내 `내가 왜, 이 많은 시간을 죽이면서 이 자리에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짜증이 난다. 나는 촌스럽다. 그냥 투박한 뚝배기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국밥에 깍두기면 그걸로 족하다. 만남은 부담 없이, 대화는 풍부하게 나누고 싶다. 맛집이나 장소의 분위에 억지로 맞추는 정형화된 식사는 숨이 막힌다. 그냥 나이고 싶다. 내게 강요하는 것들에 맞춰 음식을 먹는 것은 고역이다. 필요 없는 말들과 형식에 얽매이다 집에 돌아오면 피곤이 밀려온다. 올 연말도 이런 피곤함으로 시달리고 있다. 나는 배고픈 사람이다. 영혼의 위로가 있는 밥이 먹고 싶다.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진솔함을 나누는 식사를 하고 싶다. 내가 퍼즐처럼 맞추어진 과식과 디저트로 연결되는 식사는 정말 싫다. 이런 패턴이 팽팽한 요즘 나는 좀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