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투병일기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

장마비가 내리고 있다. 마음이 참 허전하다. 이런 날이면 아버지와 일식집에서 회를 먹으며 매실주를 나누고 싶다. 세상의 모든 근심과 마음이 무거울 때면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회를 사드리면서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재미있는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가 살아 오는 동안 겪었던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내 자신의 걱정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내가 하는 걱정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닫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 왔던 기억이 있다.

창 밖에 비가 내리고 아버지가 생각난다. 참 불효였던 나였다. 세상의 끝에서 서 있던 내가 그땐 아버지가 너무 멀리 있었다. 늘 주말이면 대청소를 마치고 과일과 차를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던 아버지. 그가 참 오늘 많이 생각난다. 내가 아는 유일한 남자이기도 한 것 같다. 시집 늦게가도 돼, 나랑 더 놀다 가렴하던 그였다. 아마도 내 운명을 알아서 였을가? 내 인생의 가장 영향력있던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참 놀랍도록 신 문물을 잘 받아들이고 호기심도 높았던  분이었던 것을 아주 늦게 깨달았다. 도시에 살면서도 자연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었고, 주말이면 가족 중심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실컷 한 주간의 겪은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우던 거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게 유쾌하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넉넉한 자들만의 여유였음을 결혼을 하고 알았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려 하면 꼭 서로 비슷한 문화적 공감대가 있는 사람이가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싶다. 부부 싸움중에 가장 화를 불러 오는 말은 "너희 집은 그렇구나!", "수준 떨어져서 같이 못 살겠네." 등의 말이다. 아마도 가치의 차이일 것이다. 

아버지는 광어회를 참 좋아 하셨다. 광어는 자연산으로 5Kg이상이어야 그 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엄격함의 봉인이 해제되고, 그냥 남자가 된다. 그리고 때론 젊은 오빠가 되어 엄마를 만나던 이야기, 젊은 날의 직업을 갖기 위해 고민하던 때의 이야기, 최근 화랑에서 보고 온 그림이 너무 떠 올라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는 이야기  등 소제는 무궁 무진하다. 아버지를 따라 인사동 화랑에 들러 그림을 감상하고 그 근처 소박한 찬이 정갈한 집에서 마음의 여유를 느끼던 그때가 참 그립다. 아버지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음악과 예술을 사랑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아버지가 그림을 새로 산 날은 적어도 1시간이상은 같이 그림을 감상하고 품평을 해야 했다. 아버지가 왜 이 그림을 샀는지를 열정으로 설명하던 아버지. 그림의 터치와 화가의 특징을 등을 이야기하며 행복해 하던 아버지. 그런 남자 그립다. 사는 현실은 팍팍해도 마음의 여유를 즐길 줄 알았던 지혜로웠던 그가 참 생각 나는 아침이다. 가끔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의 우울한 마음도 사라진다. 그의 진실된 표정과 웃음과 그리고 평화로운 마음이 내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좋아하느 그림들을 그래서, 오늘 보고 싶지도 모른다. 

 

728x90

'투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 카테고리명을 바꿀 때  (0) 2019.10.07
운무 속에 걷다 온 청도  (0) 2019.08.23
안부를 묻고 싶은 졸업의 의미  (0) 2019.07.25
안일환 작가 나무  (0) 2019.07.20
하루하루 버티기  (0) 201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