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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운무 속에 걷다 온 청도

여름 휴가를 경북에서 올해도 보냈다. 내가 자라난 곳이 아니어서인지 나는 늘 경북 여행이 참 좋다. 산하도 다르고 먹거리 풍물도 나르다. 또한 신라의 향기가 묻어나는 곳이라 잊어진 역사의 뒤안길을 만나서 참 좋다. 올해는 청도로 여행을 떠나면서 내 마음을 추스리고 싶었다. 깊고 깊은 산속에서 그 동안 쌓인 묵 찌꺼기를 버리고, 새 마음으로 돌아 오고 싶었다. 나의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 준 오라버니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여행을 못 가는 사람들의 이유는 각양각생이지만 그 중 같이 동행할 사람이 없어서와 돈이 없어서가 가장 딱한 것 같다. 나는 아직 세계여행을 시작하지 않아서인지 주변의 해외여행을 국내여행처럼 쉽게 쉽게 다녀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번에는 트리블 여행이라 이름 지어본다. 내 버킷 리스트중 대구 갓바위, 청도 운문사, 포항 호미곶이 있었는데 올 여행중에 이 모두를 다 다녀왔다. 사전 계획은 정읍, 대구, 청도 정도를 다녀 올 계획이었는데, 그 곳에서 가까운 바다가지 병행이 되고 보니 포항은 보너스로 들어 온 것이다.

사실 내가 생각한 청도의 운문사는 깊은 산사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평지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는 청정 수도원이었다. 사람들은 너무 비구니라는 단어를 강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호거산 아래 신라의 향기를 담뿍 담고 있는 이 절집은 어느 것 하나 위압감을 주는 것이 없는 겸손의 아름다움이 베어 있다.

절 앞 흰 목백일홍 꽃과 약수의 졸졸 흐르는 소리로 사람을 반겨 주고, 멀리 편경이 있는 곳에 단청이 고아하여 더 더욱 아름답다. 대웅전 뒤의 하얀 불두확 꽃이 어찌나 소담스러운지 늘 서울에서 애기 불두화 묘목을 보면서 언젠가 여름에 불두화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는데 이 곳에서 만나 보니 참으로 아름답다.

화랑의 정신적 지주인 원광법사가 이곳에서 기거했던 절집이라니 그 기상이 넘치는 지혜와 덕이 쌓인 공간이라 더욱 좋고, 운문사에 가거든 꽃 대웅전에 들어가서 잠시 묵상을 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넓고 넓은 대웅전의 반질반질한 나무의 촉감과 자애로운 부처의 미소와 만나 보지는 못한 스님들의 새벽을 여는 예불소리가 머무는 곳이니 이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인가? 종교의 걸림으로 목만 내밀어 구경만 하고 스친다면 그 인연은 그 정도일 것이다.

어쩌거나 나는 쉼을 하고 돌아 오니 참 마음이 평화롭다. 해마다 8월15일 주간에 떠나는 나의 휴가는 좋은 날씨와 청명함을 늘 선물로 받는데 이번 휴가에는 태풍이 불어서 대구 갓바위를 걸을 때는 오히려 가는 비와 시원한 바람 덕에 산에 오르기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고, 우리가 이동을 할 때면 장대 같은 소낙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날 잠시 낯선 운문댐 앞에서 지난 시대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을 보는 것도 참 묘했다. 대구 계산성당에서 첫 부인과의 결혼 사진 그리고 수몰마을의 공덕비에 목각인형처럼 무 표정한 그의 사진을 보니 마치 내가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매일 울리는 새마을 운동 노래가 내 귓가에 스쳤다. 산다는 것이 무얼까? 오늘의 신념이 과연 내일의 신념이 되어도 되는 걸까?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막상 부자나라가 되어 보니 우리 알지 못햇던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읽어버리고 우리가 가진 정서가 모두 사라졌다. 다만 하루하루 행복하면 된다는 좌절 아닌 좌절같이 살아고 내고 있다. 돈과 바꿀 수 없는 정이란 단어가 그리운 아침이다. 

우리 좀 정스러우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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