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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미장원에서 마빡이가 되어/2005년 10월 12일

머리를 깎으러 평소 가던 미장원 의자에 앉았다.

"오늘 뭐 하실 거죠?"라는 미용사의 말에 나는 잠시 짧은 침묵 후에  "저, 머리를 완전히 밀어야 주세요."

"왜, 어디 안 좋으시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뒤에 미용사 분이 전기면도기로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언젠가 영화배우 강수연씨가 아제아제 바라아제 영화 촬영을 위해 머리 깎은 소감을 묻자. "귀가에 스치는 바람소리가 참 좋다"라고 했는데 사실 나도 간혹 죽기 전에 머리 한번 깎아 보고 싶다고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선뜻 용기가 없어서 아직 한번도 머리를 밀어 보지 못했는데 기분이 묘했다. 물론 가발을 가지고 갔고, 미장원 다음 코스는 사진관으로 갈 예정이다.

 

머리를 깍고 보니 미장원의 손님들이 나를 힐끗힐끗 바라본다. 아마도 안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나 자신이 생각해도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어쩌랴 나에게 일어난 사건인 것을.

 

사진관에서 차를 마시고, 아직 머리카락이 묻어 있는 상태에서 빠박이 얼굴 모델을 하고 있다.

쾌나 쑥스럽지만 그래도 나 인데 내가 내 모습을 사랑해 주어야겠다. 다시 가발을 쓰고 사진기 앞에 앉아 있다. 빠박이도 가발을 뒤 집어 쓴 내 모습도 모두 모두 낯설지만 친구가 되어야겠다.

 

항암을 하면 머리만 빠지는 줄 알았는데 온몸의 털이란 털이 모두 빠진다. 앞으로 나는 조금씩 괴기스러워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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