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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상식

돈빌려 집산 多주택자 속탄다

돈빌려 집산 多주택자 속탄다
7만 처분조건 대출자…금리 오르고 집 안팔려

"아파트가 안 팔리는 걸 어쩌라는 거예요, 도대체…."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 만기까지 방배동 아파트를 처분하고 대출도 상환해야 합니다."

서울 방배동에 소형 아파트를 갖고 있던 김순자 씨(가명)는 지난해 9월 한 시중은행에서 처분조건부 대출을 받았다. 도곡동 중형 아파트를 새로 구입하면서 은행 돈을 빌리려니 방법이 없었다.

기존 방배동 집을 1년 안에 팔면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김씨는 요즘 입이 바짝 타 들어간다. 올해 들어 주택 매수세가 눈에 띄게 줄어든 데다 거래가 한산한 휴가철이어서 몇천만 원 싸게 급매물로 내놨지만 문의가 거의 없다.

3일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에 따르면 만기까지 집을 팔 수 없다면서 기간 유예를 요청하는 처분조건부 대출자들 문의와 민원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처분조건부 대출이란 기존 B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사람이 투기지역 A아파트를 추가로 구입하면서 1년 안에 B아파트를 처분하는 조건으로 받은 대출을 말한다.

최근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급등하는 데다 부동산 거래마저 위축되면서 처분조건부 대출을 받은 사람들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집을 제때 팔지 못하는 사람이 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민원이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의 처분조건부 대출자들이 원리금을 연체하거나 주택 처분을 못한 건수는 지난해 말 20여 건에 불과했지만 최근 들어 50여 건으로 부쩍 늘었다. 6개월 사이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다른 시중은행에서는 100건이 넘는다고 들었다"면서 "계약할 당시 1년 안에 처분하기로 한 주택을 만기 안에 파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을 고객들에게 수차례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분조건부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부동산시장 침체로 거래가 안 되는 특수 상황을 감안해 만기 연장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은행 담당자들도 처분조건부 대출 규정이 너무 엄격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규정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금융감독 당국에서 지적받을 수 있다는 게 부담이다. 금융감독 당국도 섣불리 규제 완화를 결정할 수 없는 처지다.

은행권의 처분조건부 대출 금액과 건수는 7조2000억원과 7만1000건에 달한다. 이 중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은 3조2000억원가량, 2만9800건으로 파악된다. 우리은행의 처분조건부 대출은 2만7000건에 2조9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혁주 우리은행 과장은 "1년 안에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못하면 만기를 넘긴 후 3개월까지는 대출 원금에 대해 17% 연체이자가 적용되고, 3개월을 넘기면 19%로 금리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또한 3개월이 지나면 해당 은행이 경매 등 상환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기존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을 갚더라도 주택을 처분해야 할 의무는 그대로 유지된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거래가 뜸한 지역의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못해 1년 전에 새로 산 아파트를 팔아 대출을 해소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처분조건부 대출을 관리하기 위해 만기 3개월 전 안내문 발송, 1개월 전 독촉장 발송, 상환 임박 시점에서 전화 독촉 등으로 기존 대출자들 상환을 압박하고 있다.

은행 담당자들은 아직까지 처분조건부 대출 연체율은 염려할 수준이 아니지만 연체 건수로 보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처분 이행률은 98%에 달했다.

처분조건부 대출을 갚기 위해 편법으로 제2금융권 대출을 받아 갈아타기를 시도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은행 대출금을 갚는다고 해도 기존 주택 처분 의무가 유지되기 때문에 집을 처분해야 한다는 게 은행들 설명이다. 특히 한국자산관리공사에 공매를 신청한다고 해도 만기 전까지 소유권 이전이 완료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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