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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면접 후유증

 일이 되려면 눈사태처럼 몰려온다. 내내 한가 했는데 지난 월요일은  모임, 면접, 서류제출 등의 일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면접이 오후 늦게 잡혔고, 딱히 수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서 `왜, 면접을 보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전 준비 없이 그냥 면접을 보러 갔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앉아 있었다. 나는 단지 새롭게 배울 욕심으로 지원하였는데 참가자들의 눈빛은 매우 진진했다. 면접은 단체 면접으로 이루어졌다. 우수한 사람들이 참여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아는 만큼 대답을 했지만 그다지 나를 제대로 알리 못한 아쉬움이 있다. 역시나 오늘 합격자 발표 문자가 왔다. 내 이름은 없다. 너무 성의 없이 면접에 임한 것이 후회가 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내가 한 결과이니 인정해야지. 단독 1:1 면접은 많이 받았지만 3:1 단체 면접은 상당히 치열하다. 더 적극적으로 임 하고 보다 더 전문적으로 어필을 했어야 했다. 

이번 면접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재 점검이 필요함을 느꼈다. 단체 면접 징크스가 있는지 지난날을 회고해 본다. 여러 면접을 되돌려 보니 매번 단체 면접에서 내가 떨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서 계속 떨어지는 것은 내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좀 더 나를 잘 소개하고, 하고자 하는 욕망을 조리 있게 어필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는 증거다. 내가 선택되지 못한 것은 내 나이 탓이라고 단정을 해 왔다. 그러나, 이번 면접 결과를 보고는 내 자신의 성실성이 낮았음을 깨달았다. 차후 다시 기회가 있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면접에 임할 것이다. 오직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전투적인 적극성을 발휘해야 심사위원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  면접 후유증으로 주중 내내 나태하고 게으름을 떨었다.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고 태평하게 TV만 틀어 놓고 넋을 놓고 있었다. 한 주간 동안 게으름 덕에 내 머릿속은 비워졌다. 내내 우울한 기분 때문에 전화벨 소리도 듣지 못해 미국 언니가 여러 곳에 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내게  연락을 해 보라고 가족들을 들 쑤셔 놓았다. 

 

누군가 나를 염려해주니 고맙다. 그저께 눈 내리는 날에 눈길을 걸으면서 나 자신의 문제를 꼽씹어 모았다. `진짜, 넌 뭘 원하는 거니?'라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1월은 정치인들에게 휘둘려 뉴스 속에 살았다. 2월 들어서 나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였지만 해마다 나는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다. 결혼 후 3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나는 전통적인 관행에 묶여 있다. 솔직히 나는 이제 내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걷어 차고 싶다. 정작 큰 며느리라는 역할에서 은퇴를 하고 싶다. 30년 동안 봉사를 했으면 나로서는 충분히 했다고 본다.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이제 내 인생을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신경이 쓰인다는 것은 내 자신이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늘 고통스럽다. 나는 이제 자유를 누리고 싶다. 내 자신이 만든 노예살이를 벗어나고 싶다. 내게 의무과 책임을 그만 요구했으면 한다. 나는 나이고 싶다. 내가 꿈꾸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제 내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다. 모든 무게감을 털어내고 본질적인 나와 나를 키워 나가고 싶다. 면접은 내게 나를 다시 점검하게 만든다. 젊은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내 머리를 흔들어 놓았다. 산다는 것은 늘 끊임없는 도전임을 상기시킨다. 나는 다시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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