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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미용실 단상

 이른 아침 집을 나서서 강남에 있는 샵을 찾았다. 예약제라 우리 팀만 있다. 남자 미용사가 내 머리를 보면서 어떤 스타일을 주로 하는지 묻는다. 가르마와 앞머리 정도를 묻고는 바로 헤어 디자인을 결정했는 작업을 시작했다. 커다란 거울 앞에 낯선 늙은 여자가 계면쩍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다본다. 젊은 날의 풍성했던 머리는 헐거워져 있고, 눈 밑 처짐이 더 나이 들어 보인다. 젊은 미용사는 천천히 정수리 가르마를 타고 드라이를 하면서 뜨거우면 말을 하라고 친절하게 말한다. 어떤 스타일로 머리를 할까 궁금함을 참으며 그가 하는 대로 고개를 숙여달라면 요청하면 숙인다. 입을 꼭 다물고 있지만 그래도 여자 아닌가. 고데기를 가지고 모양을 잡아하면서 피셋 핀으로 머리를 고정한다. 늘 세트만 말던 나로서는 약한 머리카락이 손상될 것을 염려하면서 말한다.

"제가 너무 머리가 얇아서 어떨지 모르겠네요."  "아, 괜찮습니다. 어떻게든 모양을 만들어 봐야지요." 늘상 있는 일일 것이다. 그가 전체적으로 머리모양을 만들고 헤어 장식을 꽂아 주었다. 그다음에 화장을 하러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얼굴 마사지를 하는 손의 터치가 너무 부드러워서 잠이 올 지경이다. 살짝 눈을 떠 보니 아주 앳된 얼굴의 메이컵 담당자가 미소를 짓고 있다. 화장을 받고 있는 내내 장롱에서 잊었던 옷이 나오듯이 결혼할 때의 풍경이 스쳤다. 처음 해 보는 화장에 내 얼굴이 너무나 낯설어서 나조차 놀랐던 그 당시 신부화장이었다. 오늘도 그런 화장을 당할까 약간 염려가 되었지만 최신 트렌드가 안 한 듯 한 자연스러운 이곳에서 하기에 예약을 했다고 한다. 눈을 감았다 떠기를 여러 번 하고 어느 사이간 내 눈이 무겁게 느껴질 때쯤 화장이 다 끝났다고 말한다.

 

모두들 아티스트들이다. 그 짧은 시간에 각자 개성에 맞게 화장과 헤어 스타일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화장이 너무 투명하여 몇군데 피부가 어둔 부분 재수정을 요청했다. 머리와 화장을 마치고 한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가운을 입고 있을 때에 전혀 다른 느낌의 내가 만들어졌다. 아들과 며느리 덕에  치장을 해 보았다. 젊은 날엔 바빠서 중년엔 생활에 치중하느라고 미용실은 단정하게 하기 위해 방문했다. 그리 큰돈도 들이지 않는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변신하니, 마치 공주놀이를 하는 기분이다. 매일 공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자와 미장원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은 것 같다. 누군가가 세심하게 내 몸을, 머리를, 그리고  얼굴을 꾸며주니 마음도 편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아들아, 엄마는 1년에 한 번씩 여기에 와서 호사를 누려 보고 싶네."라 말했더니 아들이 빙그레 웃는다. 참 철없는 엄마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심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가끔은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될 것 같다. 그래서 노년에 친구들이 마사지 샵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 같다. 청춘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잠시 기분 전환을 하고 그 누구도 여자로 바라봐 주지 않는 것에 대한 깊은 저항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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