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투병일기

가는 봄날

나는 봄을 싫어는 사람이다. 아마도 내가 봄에 몸의 콘디션이 안 좋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좀 봄은 소란스럽고 사람들도 좀 둥 떠 있는 듯한 인상이 든다. 꽃을 좋아하는 나는 나에게 꽃을 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편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나에게 꽃을 준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평소 꽃을 받을 만큼 축하할 일이 그닥 많지 않았고, 그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아 본 경험도 없는 것 같다. 요새 아이들 말로 좀 쪽이 팔리는 고백이지만, 그게 나 인 것을 어쩌랴! 병마에서 벗어난지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 자신 조차도 그렇게 세월이 흐름을 최근 유병자 보험을 가입하는 과정에서 오랜 수첩에 메모를 보고서야 강산이 변한 세월을 느꼈다. 한번 아파 본 사람은 아프다는 그 강도를 알기에 다시 병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를 하고 조심을 한다. 

정약용 선생의 호가 여유당으로 살얼음을 걷듯이 조심한다는 뜻인데 나 또한 살얼음 판을 걷듯이 살아 왔다. 그리고 가능한 현재형 인간으로 살아 왔다. 오늘 하루 안녕하면, 감사 기도를 드리며 잠을 자는 정말 단순한 삶을 살아 왔다. 내 자신이 언제부턴가 샘플라이프로 전환되었고, 가끔 뭉글뭉글 일어나는 욕망을 잠재우고 사심없이 무심하게 삶을 살아 왔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심심해도 되는 걸까? 하고 묻기도 했지만 나의 삶을 비우고 비우는데 많이 치중하며 살아오다 보니 어쩌면 잃은 것이거나 과거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저 사람 참 많이 변했어"라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나 자신 내가 너무 변해서 낯설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 이기에 나는 후회는 없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기차게 한번 살아 내고 싶기도 했다. 젊은 날에는 그러나, 현실이 내게 기차게 살기 보다는 더 겸손하고 더 낮아져서 살라고 시련을 주었다. 그래서 투병 후 나는 하루살이 인생을 사는 것으로 삶의 모토가 바뀌었다. 오늘 하루 편안하면 감사!! 이런 삶이다 보니 참 심심하고 심심한 사람이 되었다. 간이 약간 부족한 사람이 되고 보니, 모잘라 보이고 부족하고, 더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가는 봄날이 아쉬운 걸까? 

마음이 참 허 하다.

 

728x90

'투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 있음으로 해서  (0) 2019.05.28
초등 동창회을 바라보며  (0) 2019.05.13
무게감  (0) 2019.03.21
2019년 바꾸기 시니어 혜택 정보  (0) 2019.03.20
죽음을 기억하라  (0) 2019.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