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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무게감

봄비가 촉촉히 내린 이른 아침 갑자기 내게 나 자신이 질문을 한다.

"너, 뭐하고 있는 거니?" 갑자기 숨이 탁 막힘을 느낀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가던 걸음을 멈춘다면 난 뭘하고 싶은 거지?" 그동안 무엇이 바뻤는지 블러그도 들어 오지 못하고 그냥 막 살고 있었다.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면서 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무엇을 가장 우선으로 하고 싶은 걸까?

어떤 삶이 진짜, 내 인생일까?

나이 오십을 먹고도 수 많은 소리에 시달리다 보니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흔들린다. 좋아도 그저 웃고, 슬퍼도 그냥 웃으며 살아 온 나날이 참 허무하다. 올 들어서 청첩장과 부고장을 동시에 많이 받고 있다. 아마도 내 인생의 중반 쯤의 절정에 있는 것 같다. 최근 은퇴한 친구가 애경사비가 무섭다는 푸념이 이해가 된다. 나도 그 누군가에게 신세를 참 많이 지고 살아 왔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일들이 새롭게 깨닫게 된다.

나는 참 무심한 사람이다. 내 환경이 나를 참 무디고 무디게 만들었다. 일희 일비할 수 없었기에 앞만 보고 달려 왔다. 그리고 재 자리에 서고 보니 지금의 내가 `나' 라는 사람이다. 나란 사람은 참 볼품이 없고 추한 사람이다. 타인의 선의를 선으로 행하도록 도움을 주었으나, 내 자신의 삶은 참 선하지 못한 점이 많다. 사람이 살다 보면 세상 풍파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치른 이 마당에서 새삼스럽게 나에게 묻는다. "넌, 지금 행복하니?"라고....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역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인 것 같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활기가 넘치고 웃음이 넘치는 곳에 머물고 싶다. 내 삶은 너무 초라하여 어디에 내어 놓기조차 부끄럽다. 누군가를 위해 베풀어 본 적이 없고, 기분 좋게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적도 없는 것 같다. 매우 옹졸하고, 때때로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정말 까칠하게 살아 온 것이 사실이다.구지 변명을 하자면 아마도 나의 민감한 센서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나치게 예민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남들은 그냥 스치는 일도 나는 자세히 보고, 생각하고, 또 관찰을 한다. 물론 내 자녀와 가족에게는 이런 잣대는 무디지만 일과 사람 관계에서는 좀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다. 어젠가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난 후 20대때 쓴 일기장을 읽어 보았다. 일기장 내내 나는 외롭다, 쓸쓸하다, 고독하다 등등의 단어와 내가 접했던 전시회와 공연 티켓들이 붙어 있었다. 참 뭐하는 짓이었을까? 그해 봄 나는 그 일기장들을 모두 불에 태워 버렸다. 다시 새롭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올 봄 다시 새롭게 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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