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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아파트에 들어 갈수가 없다.

아들이 아파트 키를 할머니 댁에 놓고 왔다면서 사무실로 찾아와 아파트 키를 가져갔다. 평소 같으면 학원에 가면서 키를 되돌려 주러 오는데  아이가 오지 않았다.  나는 저녁거리로 두부와 콩나물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조금 욕심을 낸 것이 탈일까? 저녁식사 후 여성지를 보려고 잡지까지 들었으니 짐이 무겁다.  집으로 가는 길에 후회가 되었다. 옛날처럼 무거운 것을 들어서 안된다. 어찌나 잡지책이 무거운지 옆에 사람이 지나갈 때 도움을 청하고 싶은 심정이다.

 

거기다 집 도착하고 보니 이게 왠일?  아파트 문은 잠겨있고, 벨을 눌러도 깜깜무소식 다른 때 같으면 아빠가 있을 수 도 있는데 오늘은 집이 조용하다. 아이가 학원에서 끝나는 시간은 오후 7시경 " 지금부터 한 시간만 기다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학원에  전화를 걸까 하고 가방을 보니 그나마 사무실에 핸드폰을 놓고 왔으니 낙심천만!

 

앞집에 가족들이 달그락달그락 저녁식사 소리가 들리고, 아이는 오지 않고. 날씨는 춥고. 집 앞 공중전화에서 아들이 잘 쓰는 콜렉트콜을 하기 위해 공중전화 박스 안내문을 찾는다. 백만인의 상식인 콜렉트콜 번호가 떠오르지 않는다. 난 아이가 말할 때 건성으로 콜렉트 콜 방법을 들어서 154 뭐더라? 다시 공중전화 박스의 스티커를 찾는다. 긴급버튼 누르고 1541한 다음에 안내 멘트를 따라 하란다. 급하게 아이의 학원에 전화를 걸어 수신자 부담을 알리고 아이를 만나면 집으로 빨리 귀가 조치를 부탁하였다.

 

참 기가 막혔다. "키가 없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세상에서 너무나 전근대적으로 살고 있는 나, 어이없지만 나에겐 지금 키가 없다. 두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엔 배가 고팠고, 두 번째는 화가 났고, 세 번째는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뒤 이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 약이 올랐다. 화를 내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야, 너 그렇게 화 내면 병이 도져!"라고 충고를 한다.

 

그냥 쉬고 싶은데 쉬지 못함에 대한 설움이었을까? 아이를 찾아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니 속이 좀 가라앉았다. 아이도 나도 오늘 건망증 때문에 큰 일을 치렀다.

 

아이가 다시 운동을 갔다 온 뒤 나는 나의 화의 정도를 모션으로 표현하면서 처음 아이가 돌아왔을 때의 나의 상태를 설명하고 지나치게 화를 낸 부분을 사과하고 아이가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였다.

 

아이는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꾸지람을 한다. "네가 너무 화를 낸 거야!", "네가 더 나빴어!" 늦은 저녁을 먹고 늦은 뉴스를 본다. 지난 월요일 직장에서 전화 징크스가 있었는데, 또 월요일 징크스인가? 한 주간 몸 사리며 겸손이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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