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투병일기

비선대에 오르다

설악에 오니 참 감회가 앞선다. 일명 관광버스 코스를 걷노라니 소싯적에 아버지와 빨간 등산복을 입고 오르던 등산길이 떠오른다. 서울에서 떨어져 강원도 비포장 대관령길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일이며, 큰 오라 버지가 배탈이 나서 설악동으로 먼저 내려가던 일등 여러 가지 상념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계곡 골 사이로 휘몰아지는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나는 오래전 수영복을 입고서 바위틈에 흐르는 물에 몸을 담고서 입술이 파랗게 질렸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는 사람도 많지 않고 여행 일종의 레저를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던 때라 우리 가족의 독무대에 가까웠다,

 

우리가 머물던 민박집 이름이 설악 여관이었는데 여행 뒤에 가을에 그 설악 여관 아저씨가 우리 집에 방문하여 잡도 주무시고 갔던 일이 생각난다. 아마도 그때가 1973년경이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인심과 인정이 있던 토종 한국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우리 안에 이웃에 대한 배려나 존중, 관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는 너무나 서로 간의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아가고 있다. 문을 열고 잠시 나 여기 있소 하고 외친 필요가 있다. 이제 가까운 이웃은 먼저 아는척하면서 살자! 나부터.......

 

사는 것이 편리하여졌지만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과 우리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추억은 너무나 작아지고 있다. 가족 간에도 물질이 앞서서 정작 마음을 나누기가 어렵다,

음식은 조금 부족하게 먹고 마음은 크게 먹고 덕담은 더욱더 많이 나누자.

 

설악동에서 나는

잊었던 아련한 추억과

마음을 나누면 살아가기 위한 다짐을 한다.

///

설악산에 오르고 나니 참 감개무량하다. 일반 관광 코스를 걷노라니 소싯적에 아버지와 빨간 등산복을 입고 오르던 등산 길이 떠오른다. 서울에서 떨어져 강원도 굽이굽이 비포장 대관령 길을 흙먼지를 날리면 달리던 버스.  건 오징어를 먹은 큰 오라버니가 배탈이 나서 설악동으로 먼저 내려가던 소등 등 설악산에서의 나의 추억과 상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계곡 골 사이로 휘몰아지는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나는 오래전 수영복을 입고서 바위틈에 흐르는 물에 몸을 담고서 입술이 파랗게 질렸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는 사람도 많지 않고  레저를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던 70년대라 우리 가족의 독무 대장이 되어 실컷 놀았던 추억이 깃든 산이다,

 

우리가 머물던 민박집 이름이 설악 여관이었는데 그해 겨울에 설악 여관 아저씨가 우리 집에 방문하여 잠도 자고 갔던 일이도 생각이 난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심과 인정이 있던 토종 시절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우리 안에 이웃에 대한 배려나 존중, 관심이 사라진 지 오래라서 그 시절이 더욱 그립다.

 

우리는 너무나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아가고 있다. 문을 열고 잠시, "나 여기 있소 ."라고 외친 필요가 있다. 이제 가까운 이웃은 먼저 아는척하면 안 되는 걸까?  나부터.......

 

사는 것이 편리해졌지만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과 우리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추억은 너무나 작아지고 있다. 가족 간에도 물질이 앞서서 정작 마음을 나누기가 어렵다,

음식은 조금 부족하게 먹고, 마음은 크게 먹고,  덕담은 더욱 더 많이 나누면 좋겠다.

 

설악동에서 나는 잊었던 아련한 추억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면 살아가기 위한 다짐을 한다.

 

728x90

'투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상 미소로 사랑으로  (0) 2006.12.11
무력감이 밀려와  (0) 2006.12.11
12월을 맞이하다니?  (0) 2006.12.06
그리움  (0) 2006.11.27
침묵  (0) 2006.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