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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상식

한국은 외환위기 안전지대에 있나

한국은 외환위기 안전지대에 있나

'가능성 상당히 희박' 의견 대세

아시아와 동유럽, 남미 지역 일부 국가들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과연 우리나라는 안전지대에 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은 1997년 당시 "우리는 전혀 상관없다"고 굳게 믿다가 순식간에 외환위기를 맞은 전례가 있는 데다 고유가 상황에서 경상수지의 구조적인 악화, 단기외채 증가 등을 확대 해석해 외환위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물론 민간연구소 관계자들도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희박하다" 또는 "전혀 없다"고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 외환위기설 갑자기 왜 나오나

19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국제금융시장 등에 따르면 최근 외환위기설의 진원지는 베트남.필리핀 등 일부 아시아 국가, 라트비아.크로아티아.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 등 10여개 개발도상국이다.

이들 국가는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흘러 넘친 자금을 끌어들여 경제 성장을 추구했지만 고질적인 경상수지 적자 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중반 이후에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라 국제 자금이 이들 국가에서 빠져 나와 안전지대로 향하자 유동성 위기가 점차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기 침체도 이들 국가의 수출 감소로 이어져 경상수지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이들 국가 중 1~2개라도 벼랑 끝으로 몰리면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로 위험이 옮겨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한국의 내부 변수로는 단기외채의 급속한 확대를 들 수 있다. 3월 중 순대외채권은 149억5천만달러로 작년말의 355억3천만달러에 비해 205억8천만달러가 급감해 조만간 순채무국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고유가로 인한 경상수지의 구조적인 악화, 물가 안정을 위한 달러 매도 개입과 이에 따른 외환보유고 감소 등도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내부 변수로 꼽힌다.

◇ 국내외 경제여건 악화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내외 변수들이 당분간 크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실물경기에 대한 타격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국가에 대한 위기설이 과장된 것은 아닌지, 과장되지 않았다면 이들 국가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건이다.

한국의 단기외채 문제를 외환위기 가능성과 연결 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순채무국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조선업체나 해외증권 투자자의 선물환 매도나 외국인의 채권투자 확대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기엔 곤란하다는 것이다.

다만 경상수지가 구조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유가 급등 국면을 맞았다는 것은 중장기적인 악재로 해석되고 있다.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상품수지 흑자에 비해 급속히 커지고 있는 서비스수지 적자를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올 들어 4월까지 경상적자 규모는 67억8천만 달러로 정부의 올해 경상수지 예상치인 70억 달러에 이미 근접해 있다.

정부가 최근 들어 물가 중심으로 경제정책 방향을 선회하며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고 있는 것도 부정적인 변수로 꼽힌다. 고유가를 방어하기 위해 정부가 달러를 팔면서 원.달러 환율 상승을 막는 상황이 지속할 경우 외환보유고가 빠르게 소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현재 2천600억달러이다.

◇ 정부.전문가 "걱정할 상황 아니다"

그러나 정부와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 전반에 걸친 주요 변수들이 부정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해선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1997년 외환위기 경험 때문에 과도한 반작용을 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해 "당분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주 연구위원은 "외환위기는 경상수지 적자가 굳어져 5~10년간 이어질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단기외채의 확대 및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등과 같은 변수 만으로 외환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베트남 등 일부 개발도상국들의 움직임은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현재 세계 5위권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는 국가"라며 "고유가 등 의 변수로 인해 경상수지가 당분간 악화될 수 있지만 외환위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경상수지 적자 폭이 크지 않고 이미 자금유출이 상당기간 지속돼 외국자본에 대한 의존도도 낮아져 있다"며 "일부 신흥국들이 위기를 맞더라도 한국과 같은 형태의 국가에는 위험이 전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단기외채가 늘어난 것도 그 성격을 보면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며 "1997년 외환위기에 따른 원죄의식 때문에 작은 위험에도 편집증적으로 반응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고위관계자는 "상반기 중 한국이 순채무국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외형적 숫자와 달리 외채의 질과 양에서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한국은 세계 수위권의 거대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는 나라"라며 "해외 신용평가사들도 한국의 신용도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speed@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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