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란 시간을 그냥 버렸다. 내내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 낭비를 했다. 애문일에 정신이 나가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음도 기력도 모두 소진하고 보니 남은 것은 몸살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양도성 순례 길 일정이 내게 큰 위로다. 마음을 다 잡아야 하는데 지금은 전쟁을 끝내고 돌아돈 병사 상태다. 다시 전투를 하라면 나를 부인할 수밖에 없다. 이제 전투는 그만이다. 다시 나 자신과의 전쟁을 하는 것이 옳음을 깨닫는다.
비가 내리는 화요일 아침. 차양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내 마음을 다독인다. "그래, 괜찮아. 넌 충분히 했어."라 말해 준다. 내 마음이 두갈래 길에서 갈등을 하면서 그냥 부딪쳐 보았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무식하게 맨땅에 해팅하기를 시도했다. 모진 밤을 새우면서 나 자신의 밑바닥에 있는 생각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다. 게임에서 진다는 것은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시의 적절하게 어제 시 마을 사람들의 주제가 "변화"였다. 나즈막이 꿈을 키워 이룬 강사가 자신감 넘치게 강의를 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말을 곱씹으면서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간혹 나오는 그의 사투리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감기약 이 내 몸에 마약처럼 스며들어 눈이 흐려져 책의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데 자꾸 몇째줄 부분을 읽으라 한다. 정말 두개로 중첩되어 보이는 글자들을 눈을 부라리면서 읽어 나갔다. 어린아이가 책을 읽듯 힘겹게 책을 읽었다. 그동안 책으로부터 멀어져 있었기에 느끼는 당혹감이다. 수업이 끝나고 책 두 권을 빌려 들고 저녁 장을 보았다. 문득 책을 든 나에게 "아휴, 책 오랜만에 보내요. 대학 졸업한 후 책을 읽어 본 지가 언젠지!" 막 퍼 주는 집 야채 상인이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나는 그를 보았다. 그도 책을 본 지가 오래되었나 보다. 나처럼. 그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았다. 생활에 찌들어 무심히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갈 길을 읽어버린 상태. 그런 그를 향해 "저도 오랜만에 책을 보려고요. 노안이 오기 전에 정말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그가 웃으면서 "도대체 일 끝나면 잠자기 바빠서, 책은 엄두가 나지 않네요."라면 거스름 돈을 내주었다.
그는 바뻐서 책을 보지 못하지만 나는 긴 시간이 내내 있음에도 책을 보지 않았다. 고작 신문 한 장 읽는 것이 유일한 나의 독서였다. 활자와 살아가는 것은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데, 근 한 달을 어영부영 내 몸을 망가트리면서 여러 사람을 괴롭힌 것 같다. 여러 기관과 기관 심사위원들과의 면접을 통해 내 소속의 욕구를 보완해 보려 했는데 이제는 그만해야겠다. 그들이 끼어 주지 않으면 나 혼자 나를 채용하여 내 가능성을 만들어 봐야겠다. 주제 있는 삶을 만들어 봐야 한다. 시대의 혼란함을 핑계 삼아 내 삶을 방치한 작년 연말과 올 초였다. 매일 방송을 듣고 매일 정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 풍파에 내 삶을 방관했다. 다시 내 삶의 길을 재정비하고 나의 공작소를 개설해야 한다. 내 가까이 있는 사람의 재능을 활용하여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 좋은 사람들이 그나마 내 주변에 있어서 감사하다. 비가 내리는 것은 땅 속 깊이 숨어 있는 씨앗들에게는 새 소식이다. 마른땅을 뚫고 꽃이 나오듯이 나도 삶의 씨앗을 틔울 때가 될 것이다. 이 비가 그치면 나는 또 다른 나로 태어나야 한다.
모든 문이 닫히는 날, 다시 새로운 문이 열렸다. 내게 주어진 일들을 받아들이고 유혹을 떨쳐 버리고 진정한 내 삶의 길을 만들어 가자. 오래도록 소식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내 스스로 연락을 하고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새 봄을 맞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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