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가 몸서리치게 불쾌한 경험을 하여 내 몸이 부들부들 분노로 떨었다. 나는 모르는데 내가 화가 나면 눈 동공이 커지고 그 큰 눈이 더 커진다고 한다. 바로 그런 상태였다. 온몸에 분노가 차 올라서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어디서 그런 분노감이 쏟아 올라 왔는지? 그 일이 있은 후에 나를 분노하게 한 사람이 짐승으로 보였다. 내 눈이 뭘 하는 것일까? 또 내 대뇌는 왜 정상적인 사람을 짐승으로 인식하는 걸까?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단 한마디도 하지 싶은 심정이었다. 그의 발걸음, 그의 행동, 그에 관련된 그 모든 것이 몸서리치게 싫다. 사실 여러 차례 부딪쳤지만 매번 당해도 "내가 나이가 많으니 참아 주어야지",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사과를 함으로 그가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그의 자존심을 살려 주었다. 그런대로 5개 월을 버티어 왔는데 어제의 그의 불쾌한 언사와 행동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 이제 그를 볼 날이 열흘 정도 남은 상태에서 또 다시 그의 잘못된 행동이 내 참았던 분노를 폭발시켰다. 나는 그에게 한 것은 놀란 눈동자와 말을 하지 않음이 전부였다.
열흘이 지나면 이제 그를 다시 볼 일은 없다. 나의 계약기간이 이 달 말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용서가 안 되어 하루 동안 내내 그에게 말을 하지 않고 그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한 하루 동안 오후 퇴근을 할 때쯤에 내 몸이 아팠다. 온몸에 기운이 쪽 빠져서 나가 가방을 들 기운도,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길바닥에 팍 주져 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렵게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힘겨운 몸을 이끌고 저녁을 차렸는데 모두 각기 방에 들어가 있다. 늘 그러하듯 내가 저녁을 차리고 자기들을 불러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말할 기운조차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밥을 챙겼다. 말할 기운이 없어 각자에게 전화를 걸어 식탁에 밥 차려 놓았다고 했다.
늘 저녁을 같이 하는데 이런 이상한 내 행동에 아들이 "집에서 왠 전화?" 하면서 전화가 끊겼다. 그리곤 쟁반에 밥을 담아 내 곁으로 오면서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라고 묻는다. 그런 아들에게 나는 "지금은 말할 기운도 없단다."라고 말하니 아들도 화가 나고 불쾌감을 느꼈는지 식탁을 가 버렸다. 한 사람과의 관계가 망가진 후에 후유증이 나와 내 가정의 불씨가 되었다. 이런 사소한 감정처리 조차 못하여 밖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 가지고 들어 온 내가 한심하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 지쳤고, 너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예전엔 남과 다투어도 이런 후유증은 없었다. 그리고 충분히 뻔뻔할 수 있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나는 평화주의자가 되어 가능한 내가 참자로 일관하고, 내가 나이를 더 먹었으니 넘어가자로 행동을 하다 보니 내 몸이 버거워 한다.
화가 나도 참고, 힘들어도 참고, 부당해도 참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는 것이 요사이 내 모습이다. 남들이 보면 내가 걱정도 근심도 없이 늘 웃으면서 행복하게 보이나 보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마음이 불편하고, 내 몸이 힘들고, 나는 잘 인내하는 힘도 없고, 너무 나약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편하고 좋다고만 한다. 난 힘들고 버겁고 때론 고달프기까지 한데 말이다. 나는 그 누군가를 미워해 본지가 오래 되었다. 그래서인지 하루 남을 미워하니 그런 미운 감정이 내 몸으로 가득 차서 숟가락을 들 기운조차 없어서 대충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잠이 보약이다. 어제의 불쾌감도 사라지고 다시 그를 만나기 전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그가 좋아하는 달달한 과자와 커피를 전한다. 그는 알까? 내가 어제 몹시 내가 화가 났고 그로 인해 지옥불 구덩이 속에 있었다는 것을...... 용서가 내 몸을 쾌유시켜 준다.
또 다시 일상이 시작되는 아침이다. 어제의 불편함을 가족들에게도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나란 사람, 참 어른이 언제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