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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랑 나눔

한수산의 작품세계


① 역순행적 구성방식
<4월의 끝>과 <타인의 얼굴>은 역순행적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방식은 그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4월의 끝>을 보면 “밖에는 문득 새 옷을 갈아입고 싶게 만드는 사월의 오후가 화사하게 가로수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으나”, 형을 기다리는 “나”와 “형수”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는 지극히 정적이다. 물론 “내”가 떠올리는 죽음에 대한 기억들이 삽화적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작품은 이렇다 할 극적 사건을 담고 있지 않다. 어떤 특정한 극적사건을 배제한 채 지극히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에서 보면 그 밖의 작품들도 <4월의 끝>과 다를 바 없다. 아라도까지 갔다가 회항하는 배를 승선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인 <회선>, 알코올 중독증에 걸린 어머니와 세 딸의 무의미한 삶을 그린 <모래위의 집>, 암에 걸린 옛 스승을 찾아뵙던 제자가 세상을 떠난 그를 회상하는 <타인의 얼굴>등 이들 작품에서도 역시 <4월의 끝>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이나 사건의 극적인 전개와 반전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다방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다든가, 어디론가 여행을 한다든가, 누군가를 찾아간다든가 등등의 장소변화가 있고, 군데군데 삽화적 사건도 있으며, 기억과 회상도 있다. 그러나 사건의 반전에 의한 갈등이나 시간의 도도한 흐름은 느껴지지 않는다.

까마귀

그 동안 내 또래 친구들에 비해 많은 책을 읽었지만, 누군가 내게 어떤 책이 가장 인상 깊었냐고 물어보면 우물쭈물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작년 여름 이후로는 달라졌다. 학기 초, 자신이 생각하는 베스트셀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을 때, 난 망설임 없이 한수산씨의 까마귀를 떠올렸다.
책 앞머리에 쓰인 ‘조국의 이름으로 살다, 조국의 이름으로 죽어갔으나, 그 주검조차 조국의 이름으로 버림받아야 했던 나가사키 피폭 조선인의 영령에게 이 책을 바친다’ 란 헌시처럼, 책은 일제 패망기에 일본으로 징용을 간 뒤, 희생된 조선인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까마귀는 전 5권으로, 1부에서는 1944년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삶을, 2부에서는 그런 조선인들의 가혹한 노동과 착취를, 3부에서는 지옥섬을 탈출하는 조선인과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조선여인의 삶을, 4부에서는 탈출한 조선인들의 나가사키에서의 생활을, 그리고 5권에서는 원폭이 투하되어 죽음의 도시가 되어버린 나가사키를 묘사함으로서 전쟁의 진상을 솔직하게 표현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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