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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을 앞둔 학생들이 작별인사를 하러 찾아왔을 때 나는 다 큰 녀석들을 앞에 놓고 이런 ‘하찮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학생에게는 아버지에게 안기라고 했다. 아빠, 고마워요 하면서 그냥 안겨라. 그것이면 충분하단다. 남학생에게는 아버지를 힘주어 안아 드리라고 했다. 아버지, 이렇게 길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며 너의 그 다 큰 가슴으로 안아드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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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맡고 있는 문예창작 강좌에서 학생이 써내던 글에는 유난히 아버지에 대한 안쓰러움을 담은 글이 많았다. 요즈음 대학생이 느끼는 아버지는 한결같이 삶에 힘들어하고 어깨가 처져 있다. 뒷모습이 서글펐다.
이들의 관계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거기서 화면이 정지되듯 더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방 컴퓨터 앞에 앉아 귀가하는 아버지를 돌아보며 건네는 “오셨어요?” 하는 인사, 그것이 집안에서 만나는 관계의 전부였다.
무엇보다 아버지들에게는 자신의 방이 없다. 사랑방이라는 남성의 공간이 있던 때는 이미 저 옛날이 돼 버렸다. 오늘의 아버지는 자신의 방이 없다. 게다가 오늘의 아버지와 아들은 도제(徒弟)적으로 무엇을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다. 이미 그것이 불가능한 산업사회를 살고 있고, 그들 사이를 이어 줄 끈을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다.
이 아버지들은 누구인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경제력을 갖게 되면서부터 일찍이 부모를 모시거나, 동생들의 학비를 대야 했던 세대가 있었다. 지금 자녀의 대학 졸업을 맞는 부모는 스스로가 그런 시절을 살았다. 아니면 그런 형이나 누나의 도움을 받았던 세대이다. 정신사적 측면에서 돌아보자면 우리가 이뤄 낸 근대화의 동력에는 가족이라는 특이한 토대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희생이라기에는 너무나 처연해져서, 헌신이라고나 말해야 할.
이제 졸업을 하는 세대는 다르다. ‘제 입 하나’에 ‘저 하나 잘되면’ 족한 세대다. 부모를 부양하겠다는 생각조차 안 하겠지만, 그들에게 얹혀살려는 부모도 없다.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졸업의 기쁨에 앞서 취업을 더 걱정해야 하는 젊은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맛있는 샘물이 먼저 마른다(甘井先渴·감정선갈)는 말이 여기에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좀 더 기다리며 스스로를 길러서, 끝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겠다는 넉넉한 마음이 오히려 필요할 때가 아닌가.
인도 여행 중에 아스팔트가 깔린 길 저편으로 아주 오래된 베니어 나무가 줄지어 선 길을 만난 적이 있었다. 동행한 인도 친구에게, 기왕에 나무를 심으려면 길가에 심지 왜 저렇게 멀리 떨어지게 심었느냐고 물었다. 그의 말이 놀라웠다. 코끼리를 타고 전쟁하러 다니던 시절에 심은 가로수라는 것이다. 코끼리를 타고 전쟁터에 나가느라 넓었던 길이 자동차가 다니는 포장도로가 되면서 이렇게 좁아지다 보니, 나무가 멀리 서 있는 모습이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서로 보듬어 주는 가족이 되길
우리는 가로수를 크게 기르지 못하며 살아간다. 구불구불하지만 아름드리 가로수로 아름답던 길들을 곧게 펴고 확장이나 포장을 하면서 다 베어 내거나 뽑아 버렸다. 그늘을 펼쳐 주는 큰 나무를 기르지 못하고 사는 우리들. 나무 한 그루가 그러한데 사람인들 키우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돌아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서로 안고 안기며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왜 서글프게 느껴지는 세월을 우리는 살아야 하나. 젊은 그들이 아름드리 가로수를 기르는 마음으로 이제부터 펼쳐질 세상길을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거기 얹혔다.
한수산 작가·세종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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