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내에서 15번 국도를 타고 벌교 쪽으로 30분쯤 달리면 '금치재'라는 안내표지를 만난다. 진트재는 어디 가고 금치재냐고? 거기가 거기다. 순천서는 '금치재', 벌교에서는 '진트재'라고 각각 부른다. 그러니 이 고개는 순천과 벌교를 가르는 지점이다. 진트재에서는 벌교 전경을 바라볼 수 있으며, 또한 빨치산의 열차습격 장소로 묘사되어 있는 진트재터널을 볼 수 있다. 먼저 전망대를 찾아가자. 순천서 벌교로 넘어가는 길이라면 전망대는 길 건너편에 있으니 U턴을 해야 한다. 진트재 고개마루를 오르면 바로 고가도로가 시작되는데 고가로 올라가지 말고 아랫길을 택한다. 위로 올라가면 고흥 보성쪽이다. 고가도로 밑길로 내려갔다가 교각 바로 밑의 표지를 따라 유턴해서 다시 되짚어 진트재로 올라와야 한다. 주의하지 않으면 유턴 지점을 놓친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면 다시 유턴 표지가 있으니 무리해서 중앙선침범은 하지 마시길. 이곳에 서면 벌교가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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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서면 먼저 벌교 전경을 바라본다. 멀어서 잘 보이지 않으니 망원경을 미리 준비하면 더 좋다. 중요한 것들만 설명하자. 왼쪽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큰 다리로 이어지는 길이 목포-부산을 잇는 국도2호선. 그 오른쪽으로 보이는 다리가 열차가 다니는 철다리, 다음으로는 소화다리, 홍교, 봉림교 순으로 이어진다. 철다리 앞쪽으로 중도방죽이 포구까지 이어지며, 그 안쪽이 바로 중도들판이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진트재 전망대의 맞은 편 어느 능선을 따라서 정하섭은 순천에서 벌교로 숨어들어 소화를 찾아드는 것이다. 바로 소설의 첫 대목이다. 원래 이 지역 경제의 중심은 보성이었지만 일제는 곡물 공출을 위해서 바닷물 길에 가까운 벌교를 육성하였다. 보성 벌교에만도 중도벌판, 낙안벌, 고읍들판으로 대표되는 너른 들판, 그리고 호남 동남부 넓은 곡창에서 추수한 쌀들은 벌교선창에서 배에 실려 여수로 일본으로 실려갔다. 결국 일제가 곡물 공출을 하던 길가에 떨어지는 이삭들이 벌교를 근대도시로 키운 셈이다. 교통의 요지가 되고 보성보다 더 큰 경제력을 확보하게 되면서 저절로 돈이 몰리고 주먹이 몰렸다. 벌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염상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
한 장면만 더 보고 읍내로 들어가자. 진트재터널. 이 터널을 보려면 발품을 좀 팔아야 한다. 전망대에서 철길은 잘 보이지만 터널은 보이지 않으니까. 왼쪽 봉우리 밑으로 숨어버리는 철로를 찾아서 밭고랑길을 한참 내려간다. 길은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길은 당신이 만든다. 남의 무덤과 텃밭들을 이리저리 내려가보면 길이다. 숨어있던 터널이 나타난다. 하대치부대가 군용열차를 습격했던 것으로 묘사된 진트재 터널이다. 벌교에서 터널 쪽으로는 오르막길이다. 경사진 고개길을 올라가다 올라가다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지점에서 산에 구멍을 냈다. 가뜩이나 힘이 모자란 옛날 증기기관차가 군수물자를 가득 싣고 그 오르막을 오르려면 자연히 속도가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 오르막에 돌무더기를 쌓아두고 기다렸으니 열차는 멈추었고, 그 틈에 빨치산들은 습격할 수 있었던 것임을, 철로 부근에 서보면 실감하게 된다. 진트재에서 실제로 군용열차 습격사건이 일어난 적은 없다. 이 습격사건은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다. 빨치산투쟁에서 보급투쟁은 일상적이었으니, 그 '보투'의 상징적 사건으로 작품 속에 형상화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터널을 둘러보다 보면 그렇게 설정한 것이 무리가 아니다 싶다. | ![](http://gonamdo.or.kr/jojungrae/sub_03/images/pic_02.jpg) |
마치 [태백산맥]을 위해 만들어놓은 무대 세트처럼, 이 진트재 터널의 지형은 습격사건에 잘 어울린다. 오르막 경사도 그렇거니와, 총소리를 듣고 군부대가 비상을 걸고 이곳까지 뛰어 출동하려면 20~30분은 조히 걸릴 만한 거리도 그렇다. 이렇게 완벽한 지형적 조건이 작가의 상상력을 촉발하여 열차습격사건을 도입하도록 했을 터이다. 그러니 이 습격대목의 반쯤은 작가가 아니라 이 진트재가 쓴 셈이라고 하겠다. 작품의 무대는 이렇게 작가에게 상상력을 불어 넣어준다. 상상력은 위대하지만 완전한 무에서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모델로 삼은 실제의 배경이 그대로 작품 속에 재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들은 크건 작건 현실적 배경의 끈터귀를 잡고 상상력을 동원해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태백산맥] 같은 대하역사소설의 경우는 그 시대적 공간적 배경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만큼, 실재하는 배경의 비중도 높아진다. 그러고보면 조정래가 여순사건의 중앙부인 순천과 그 여진이 미치던 벌교에서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태백산맥]을 낳게 한 원체험이 되는 셈이다. 이는 조정래의 행운이면서 우리 문학사의 축복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태백산맥] 기행을 나서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작가의 상상력을 촉발한 지리적 역사적 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데다가, 그 조건들 속에서 작가는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보았으며 그것을 어떻게 작품으로 녹여냈는지 그 자취를 뒤따라 걸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무대들과 작가의 상상력이 어떻게 [태백산맥] 속에 녹아들었는가를 추체험해 보기를 바란다. 물론 이 추체험은 지리를 잘 관찰하고 역사를 이해한 위에, 이 지식들을 토대로 여러분 자신의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작업을 통해 가능하다. 이 글과 사진들은 빈곤한 능력이나마 여러분의 그 작업을 돕기 위한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위해 벌교 현지를 8회 답사하고(그 중 2번은 조정래선생을 모시고) 태백산맥을 10번 읽었다. 답사를 할수록, 다시 읽을수록, 새록새록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띠었고 깨치게 되었다. 부디 이 모자란 글과 사진이, 여러분이 관찰력과 이해력 그리고 상상력이라는 종합적 사고능력을 발휘하는데 한 톨이라도 보탬이 되길. - 한만수(문학평론가, 순천대 국어교육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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