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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랑 나눔

다산 초당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되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이 강진에서 유배할 때 기거하며 후학을 가르치고 저술활동을 하던 곳이다.

도암면 만덕리(萬德里) 만덕산에 위치하고 있다. 강진 읍내에서는 약 18㎞ 정도 떨어져 있으며 차로는 한 이십분 정도 걸린다.

강진만(구강포)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茶山草堂)은 신유박해(辛酉迫害) 이후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한 다산 정약용(丁若鏞)이 10여년 간 살던 집으로, 다산은 이 초당에서 후학들
을 가르치는 한편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비롯한 많은 저술들을 집필하였다.

‘茶山草堂'이라는 현판은 추사(秋史) 김정희의 유묵(遺墨) 중에서 집자(集字)하여 만든 것이며, 건물은 사적 제1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주차장에서 다산 초당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약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주차장에서 한 50미터쯤 올라가면 기념품점을 겸하고 있는 찻집이 나오는데, 여기서 왼편으로 가면 다산 유물 전시관으로 가고 곧장 올라가면 다산초당으로 가게 된다. 먼저 다산 유물 전시관을 들러서 올라가도 되고, 다산초당에 들렀다가 유물전시관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다산에 대해 기초지식이 없는 경우라면 먼저 유물전시관을 둘러보면서 다산의 생애와 학문에 대한 기초 정보를 얻고 가는 것이 좋다. 조선 실학을 대표하는 대선비의 자취를 찾는 길이니 그 정도 예의는 갖추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유물 전시관을 둘러보고 찻집 있는 데까지 돌아와서 다산 초당으로 올라가면 되는데 여기서 초당까지는 한 10분 정도 걸린다.

찻집을 지나면 곧 평탄한 산길이 나오는데, 이 평탄한 오솔길은 곧 끝나고 약간 가파른 산길이 나타나는데, 나무뿌리들이 뱀처럼 가로놓여 있어서 제법 깊은 산을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길바닥에는 삐죽삐죽한 돌들이 솟아나 있어 치마를 입거나 굽이 높은 신발을 신은 여성들에게는 다소 곤혹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길 왼편으로는 울창한 대나무숲이 펼쳐져 있고,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편백나무들이 드문드문 미끈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서두르지만 않는다면 산길을 걷는 맛이 그리 나쁘지 않다. 길 오른 편으로는 임자 없는 묘지가 두 세기 와 제법 문신석까지 갖춘 묘지가 한 기 있는데, 관심을 가질 만한 대상은 아니다. 초당 부근에서는 여기저기서 동백나무들을 볼 수 있는데 초당 바로 앞에는 수령이 제법 되어 보이는 굵직한 동백나무가 한 주 서 있고 초당 뒤로도 동백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초당으로 오르는 길이 좀 가파른 돌길이라고 했지만, 이 길이 오래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좀 숨이 가빠질 만하면 이내 다산초당에 닿는 것이다. 초당 바로 아래는 잡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여름 한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고 서늘한 느낌을 주는데, 산길




을 걸어 올라가다가 다리 쉼도 하고 숨도 돌릴 겸해서 잠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면 화장실부터 시작해서 동암, 다산초당, 서암 등의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길 바로 정면에는 정석바위까지 샛길이 나 있는데, 대개는 정석바위까지 곧바로 올라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먼저 초당 마루에 앉아 숨도 돌리고 땀도 들이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다산유물전시관은 다산초당 남쪽 700m 지점에 위치하며, 주차장에서 한 40미터 쯤 올라가다 보면 기념품점을 겸하고 있는 찻집이 나오는데 찻집 바로 앞, 올라가던 품을 기준으로 하면 왼편으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길이 나 있다(하지만 차를 몰고 가면 돌려나오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기억하시라).

올라가는 길은 구릉지 한 가운데를 절개해서 만든 아주 독특한 길이다. 길 양옆으로 절개지 바로 위에 서 있는 나무 뿌리들이 삐죽삐죽 삐져 나와 있고 뻘건 대지의 속살이 내비쳐 있다. 길이 푹 꺼져 있어서 해가 바로 비치지 않기 때문에 약간 어두운 느낌인데, 이 길을 걸어 올라가는 맛이 그런 대로 괜찮다. 이 길을 지나가면 구강포가 내려다 보이는 개활지가 나오는데 길 오른편으로 가게가 있고 그 앞으로 두어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나갈 만한 오솔길이 나 있다. 이 오솔길을 따라가면 유물전시관이 나온다. 오솔길 왼편으로는 잡목이 우거진 숲이 펼쳐져 있는데(한 500평 정도의 규모), 이 잡목 사이로 뻗어 있는 오솔길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유물전시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내용은 비교적 알찬 편이다. 인력이나 예산을 확보하기 만만치 않았을 게 분명한 데도 이 정도 유물전시관이 만들어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산이 강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 만하다. 입구에는 다산의 영정이 있고, 유묵이 전시되어 있으며 다산의 가계도, 생애, 중요사건 들이 꽤 소상하게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그럴 듯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을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유물이라고 할 만한 것이라고는 책 몇 권이 전부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현란한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겠지만, 일단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의 거두 정다산의 생애와 업적 등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전시관에는 다산의 영정, 다산연보, 가계도, 학통, 다산의 일생, 다산의 업적과 유물 등이 판넬과 조형물로 입체감 있게 전시되어 있고 다산의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 즉 신유사옥이나 황사영 백서 사건 등에 대한 소개도 자세히 되어 있어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어렴풋하게나마 짚어볼 수 있다. 좀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을 때는 컴퓨터를 활용한 터치스크린에서 검색해 볼 수 있다.

영상실에서는 다산의 일생과 강진을 소개하는 영상물이 약7분 동안 상영되는데 관광객이 영상실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상영되므로 누구나 불편 없이 관람할 수 있다. 전시관 앞 광장에 대형버스 15대 이상이 주차할 수 있어 학생들의 수학여행 등 단체관광에도 아무 불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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