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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랑 나눔

노벨상 수상에 부족한 2%

[매경시평] 노벨상 수상에 부족한 2%

유대인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를 가진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인구의 0.3%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대인은 1951년 이후 노벨과학상(화학, 물리, 의학) 수상자의 29%와 경제학상의 39%를 배출하였다. 그들의 성공비결에 대한 다양한 학설이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설명은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이다.

유대인 부모는 자녀에게 우수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한다. 예컨대 그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자녀 교육을 위한 가정교사를 두고 있으며 신랑감으로 랍비(유대교 성직자)나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을 최고로 여긴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두뇌에 있어 유대인 이상이다. 얼마 전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세계 IQ 지도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IQ는 106으로 세계 1위다. 유대인 중 가장 머리가 좋다는 아슈케나지(Ashkenazi) 유대인의 평균 IQ가 107 정도일 뿐 유대인 전체 평균은 이보다 훨씬 낮다. 자녀에 대한 교육열 역시 아슈케나지 유대인에 뒤지지 않는다. 자녀 교육을 위해 살던 아파트를 팔고 부부가 생이별을 하며, 사교육비로 전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쓰는 국민은 지구상에서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슈케나지 유대인 이상으로 두뇌와 교육열을 가진 우리의 노벨상 성적표는 어떻게 이리도 참담한 것일까. 우리에게 지금껏 노벨평화상 하나만을 수여한 스웨덴 노벨상위원회를 소송이라도 하고픈 심정이다. 노벨상을 받기 위한 우리 외교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자위해 버리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

국가별 노벨상 점유율을 살펴보면 우리가 노벨상 기근에 시달리는 근본적인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1951년 이후 노벨 과학상 점유율을 보면 미국이 58%, 영국 독일 프랑스 3국까지 합치면 90%가 넘는다. 그리고 아슈케나지 유대인 대부분은 연구환경이 가장 우수한 이들 선진 4개국에 살고 있다. 노벨상으로 가는 길에는 우수한 두뇌, 끊임없는 연구 열정, 그리고 탄탄한 연구 인프라스트럭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두뇌와 열정은 있지만 연구 인프라스트럭처가 취약하여 아슈케나지 유대인과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한 것 같다.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과학자들은 평생 연구에만 매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허버트 사이먼은 어떤 한 분야에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갖기 위해선 최소 10년에 걸쳐 5만 덩어리의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저 한 분야의 전문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10년 동안 불철주야로 노력해야 한다면 위대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선 아마도 평생을 한눈팔지 말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과학자가 연구에 전념하려면 두 가지에서 해방돼야 한다. 바로 행정업무와 돈이다.

먼저 대다수 우리 과학자는 연구 외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다. 기초연구 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교수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매해 수차례 시행되는 입시에서 면접, 출제, 채점에 참여해야 하고 수많은 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행정직원들이 해야 할 일을 교수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필자가 미국 대학교수로 4년 재직하는 동안 입시에는 한 번도 동원된 적이 없었고 교수회의에 단지 2번 참석했던 것이 유일한 행정 업무로 기억난다. 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 대학 행정 인력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대는 교수 1인당 행정지원 인력이 1사람 미만이지만 미국 명문 대학에서는 3인 이상인 경우가 흔하다. 연구자가 행정업무에 쏟는 절대 시간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행정업무로 연구활동이 잠시 중단되면 다시 연구로 돌아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과학자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급여 수준이 현실화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학자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대신 보통 사람보다 높은 도덕 수준을 요구한다. 자녀 교육비를 벌기 위해 연구에 등한시할 수밖에 없는 연구자를 어찌 비난할 수 있겠는가.

요즘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후 국내 연구 환경이 열악하다고 그곳에 정착하는 유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고급인력 유출이라며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리 걱정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뇌와 열정을 겸비한 우리 유학생들이 탁월한 연구환경을 갖춘 나라에서 정착한다면 머지않아 아슈케나지 유대인을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아닐지 몰라도 한국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면 좀 위로가 될 것 같다.



[김병도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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