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전주에서 가가운 삼례이기에 전주에 갈 일도 많았는데 항상 말로만 경기전, 오목대 소리만 건성으로 듣고, 주말에 허둥허둥 볼일만 보고 서울로 출행당을 쳐 올라온곤 했는데, 마침 여행단에 끼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전주의 얼굴인 경기전과 전주 교동 거리를 걷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경기전 앞에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라는 비문에 얽힌 해설을 들으면서 경기전안에 들어선다.
경기전은 풍남문에서 동쪽으로 150m 쯤 가면, 고색이 창연한 건물로 사적 제339호로 지정된 경내에는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경기전과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조경묘가 있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태종 10년(1410년)에창건하였다고 한다.

<태조:이성계의 어용이 있는데 어깨가 늠름하고 무인의 눈빛을 느낄 수 있다>
전주, 경주, 평양 등은 창건 당시에는 어용전이라 불리었는데, 세종 24년(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하였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네 곳에 있었던 태조 어용전은 전부 소실되었다.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6년(1614년) 11월에 중건되었다.

<고종황제의 어용:붉은 색 옷은 황제임을 상징함>
경기전은 옛 전주부성내 동남쪽에 광대한 면적을 점유하고 있었으나, 일제 때에 그 서쪽을 분할하여 일본인 전용인 수상소학교를 세움으로써 경기전 절반 이상의 땅을 상실하였으며, 부속된 건물은 이때 거의 철거되었다. 현존 건물인 전각은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서, 전면에 하마비, 홍살문, 외삼문, 내삼문등이 있다.
경기전에 봉안된 어용은 경주 집경전본을 모사한 것이었는데, 세종 24년(1442년)7월에 집경전의 어용과 함께 개화하여 동년 10월에 봉안했다.
현재 경기전 어진은 고종 9년(1872년) 9월에 개화한 것이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빨리 내장산에 피난하였다가 정읍, 태인, 익산, 용안, 임천, 은산, 정산, 온양, 아산을 거친 다음 강화도, 안주를 경유하여 묘향산, 보현사 별전에 봉안되었다.
그 후 어용은 여러 번의 수난을 겪었는데, 즉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성에 피난했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으며, 영조 43년(1767년)이른바 정해대재 때는 전주향교 명륜당에 긴급 피난한 일이 있었으며, 고종 31년(1894년)에는 동학군의 전주입성으로 한때 위봉산성에 피난하기도 했다. 경기전에 인접한 북쪽에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 공과 시조비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가 있다.
조경묘는 영조 47년에 창건하여 영조가 친히 위패를 썼으며 동학혁명군이 전주부성에 입성할 때 태조의 영정과 함께 위봉사의 행궁에 옮겼다가 7월에 다시 전주로 옮겨 놓았다. 1977년 한옥마을 보존지구로 지정된 뒤, 전통한옥지구·전통문화지역·전통문화구역·전통문화특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2002년 10월 '전주시 공공시설 등의 명칭 제정위원회'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말로만 듣던 규장각 서고로 가는 길의 문인데 향도해설가 말에 이 문을 세번 드나들면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짓궂은 방문객은 세번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한다. 오래 살고 싶은 건인간의 꿈이려니...

<서고의 책의 습기가 차지 않도록거풍을 위해 기둥 위을 세운 건축양식이 특이한 것이 조상의 지혜를 느끼게 한다.>
경기전을 빠져나와 태조를 걸어 올라가는 길목에 참 예쁜 공방들과 한옥들이 아름답다.
오목대는 지금도 토성자욱이 둘려 있으며, 동쪽 발산 승암산(僧岩山)으로 뻗고 있다. 이 언덕은 이태조가 건국하기 12년 전인 우왕(遇王) 6년(1380) 9월에 삼도(三道) 도순찰사(都巡察使)로서 남정(南征)하여 운봉(雲峰) 황산(荒山)에서 발호하던 왜구 아지발도(阿只拔道)의 무리를 정벌하고, 승진고를 울리며 개선하여 개경으로 돌아갈 때 전주 부성(府城)에 당도한 이성계는 친지들을 한자리에 불러 회고의 정을 나누고자 야연(野宴)을 베풀었다는 곳이다.

<오목대에서 바라다 본 정경 멀리 정동성당이 보인다.>

발이산(發李山, 발산 : 鉢山), 속칭 미목대(眉木臺) 쪽에 솟아있는 곳이 오목대이다. 이 대위에는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組高皇帝駐畢遺址)]라는 비문이 고종(高宗) 친필(광무 4년, 1900년)로 써서 세워져 있다. 또한 그 동쪽 맞은편 이목대의[목조대왕구거유지(穆組大王舊居遺址)라고 역시 고종의 친필로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고, 비각이 건립되어 있다.
오목대에 올라 태조로를 내려다 보면서 여행의 마지막을 고한다. 볼 것은 많은데 두루두루 구석구석보지 못하고 주마간산격으로 체험한 긴 여정 짧은 2일동안의 소중한 남도체험 2007년은 전남, 전북과 인연이 있어서그동안 멀어서 가지 못했던 곳들이 차길이 너무나 잘뚫려있어 시간 걱정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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