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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임방공지사항

한용운 자료집

군말, 님의침묵, 하나가도야주셔요, 이별 알수없어요, 의삼하지마셔요, 당신을 보았읍니다. 나의노래

안녕하세요?


본 한국시각장애인복지재단 점자도서관 주최 “제1회 백담사 만해마을 문학기행”에 회원님이 선정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온산이 타는 듯한 설악산 첫 방문지는 “백담사만해마을”은 12선녀탕쪽에 위치하고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만해 한용운 선생의 기상과 아름다운 시를 감상하고 음미할 수 있는 곳입니다.

두 번째로 방문하는 백담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찰로 용아장성의 비경속에 봉정암이 자리잡고 있으며 동자승의 일화가 서린 오세암영시암이 있어서 많은 불자들을 비롯한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이번 문학기행에 참가하시는 회원님들은 1인당 오천원 회비와 복지카드를 반드시 소지하고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날씨가 많이 쌀쌀해져 있으므로 얇은 옷을 여러 벌 입고 오셔서 체온을 보호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단풍철 피크라서 조금 빠른 출발 07시 30분이오니 회원님들은 시간을 엄수하여 주시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상일동역에 도착하시면 담당자(016-9580-9393)에게 전화를 해 주십시요.

본 재단에서 사전에 보내드리는 문학기행 자료를 꼭 읽고 오셔서 알찬 문학기행을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1. 행사명 : 제1회 백담사 만해마을 문학기행

2. 행사일 : 2007년 10월 23일(화)

3. 집결장소: 5호선 상일동 역 3번 출구 앞

4. 행사 담당자 : 도서관 사서 강순자(016-9580-9393)

5. 차량 음식: 아침 김밥, 점심은 맛있는 황태구이.

6. 행사일정 안내

오전 7시 30분 5호선 상일동역 3번출구 앞에서 집결

07:30 ~ 10:20 강원도 인제군 만해마을 도착

10:20 ~ 11:40 만해마을 관람 및 자유산책

11:40 ~ 12:40 시낭송대회(만해학교)

12:40 ~ 13:00 백담사 입구로 이동

13:00 ~ 14:00 원조 백담순두부에서 황태구이 식사

14:00 ~ 14:30 용대리 마을 버스를 타고 백담사로 이동

14:30 ~ 15:30 백담사 해설가 안내로 관람 후 자유산책

15:30 ~ 16:00 용대리로 이동

16:00 ~ 18:30 5호선 상일동 도착

단, 단풍철로 돌아오는 시간은 예정보다 지연될 수 있습니다.



7. 만해 한용운 선생님 약력 안내

본명: 한유천(1879년 충남 홍성출생~1944년 6월 29일


1905년 인제 백담사 승려

1908년 원흥사 원종종무원 설립

1913년 불교학원 교원

1916년 월간지 유심 발간

1919년 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

1927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1927년 경성지회 회장

1931년 월간지 불교 인수, 발간

1935년 조선일보에 장편 흑풍 연재

1937년 항일단체만당사건 배후자로 피검


수상경력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도서 작품

1909년 불교유신론

1926년 님의 침묵


8. 백담사 만해마을

1)소개

내설악의 맑은 물이 흐르는 만해마을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위치한다.

시인이자 불교의 대선사, 민족 운동가로 일제 강점기 때 민족 혼을 불어넣은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려 만든 수련장이다. 청소년과 대학생 수련, 기업 연수, 가족 휴양에 적합한 숙박 시설과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만해문학박물관을 비롯하여 문인의 집, 만해학교, 심우장, 서원보전, 님의침묵 광장, 님의침묵 산책로가 있다.

특히, 2004년에 문을 연 문인창작집필실은 문인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곳인데 문예진흥원에서 숙식비 전액을 지원한다. 최장 4개월을 머물 수 있는 이곳의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문인들은 창작이나 집필에 몰두하거나 격의 없이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소설가 박경리 씨가 운영하는 토지문화관은 모든 예술인에게 시설을 제공하나, 이곳은 문인들에게만 개방한다.


2)설립 취지

한국문학사의 대표적 시인이자 불교의 대선사, 민족운동가로 일제 강점기 암흑시대겨례의 가슴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민족혼을 불어 넣어 주신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문학성과 자유사상, 진보사상, 민족사상을 높이 기리고 선양하기 위한 실천의 장으로 설립되었다.


3)만해 문학관

관장 : 김재홍 (평론가, 경희대 문리대학장)


*

1층 상설전시실

만해의 저서와 유품, 연대.주제별로 본 만해 한용운 일대기를 상설

전시하는 공간

2층 기획전시실

미술, 사진, 서예, 서화전 등 문예작품 기획 및 초대전 기획전시공간

3층 세미나실

한국대표 시인 시집 비치, 소회의실(세미나실), 사무실

시벽(詩壁)

1~2층을 연결하는 옥외 계단에 '시벽(詩壁)'을 만들 예정.

작고시인 50명, 생존시인 100명을 선정 작품을 동판에 새겨 전시예정

1층 상설전시실- 70여평 규모의 박물관 1층 상설전시실은 내부 공간 외에 주변의 전경과 외부공간이 함께 전시공간을 이룬다.

- 박물관 입구 로비의 벽면으로부터 '만해연대기'와 만해의 친필 '풍상세월 유수인생 (風箱歲月 流水人生)'를 만나게 된다.

-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좌측 유리벽으로 외부전경이, 우측 벽면으로만해 초상화를 대하게 된다. 박물관 안 전면 유리벽 밖에는 만고를 담은 초월자의 모습을 한 만해의 동상이 손을 내민다.

- 1층에는 만해의 친필 서예와 작품집, <연보로 본 만해선사의 생애>와 <주제로 본 만해선사의 삶>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2층 기획전시실

3층 세미나실

4)시설안내

백담사 만해마을에 조성된 건물 안팎의 모든 현판을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과 명사들이 각각 담당해 이채롭습니다.

`백담사 만해마을'은 시인 고은씨가, `만해학교'는 시인 신경림씨가, 만해스님이 말년에 기거했던 `심우장'은 시인 이근배씨의 작품입니다.

`문인의 집'은 시인 정진규(현대시학 주간)씨가, 만해광장 `님의 침묵'은 시조시인 이지엽(경기대교수)씨가, `만해문학박물관'은 김용직(서울대교수)씨가 각각 담당. 만해사의 `서원보전'은 백담사 회주 오현스님이, 경절문은 보광사 효림스님이 직접 썼으며 `서원보전'에 봉안한 만해스님 위패는 시인 정진규씨, `만해평화지종'은 도올 김용옥씨, 종에 새겨진 글은 문학평론가 김재홍(경희대 문리대학장)씨가 각각 정성을 기울인 작품입니다.



9. 백담계곡

폭포와 담이 어우러진 최고의 비경

[ 개요 및 소개 ] 설악산 대청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봉정암 용아장성과 공룡능의 협곡을 지나 가야동계곡을 만들어 굽이쳐 흐르고, 이어 대청봉의 줄기가 귀떼기청과 대승령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수렴동으로 이어지고 마등령에서 발원한 줄기가 곰골을 이루어 거대한 계곡을 이루는데 이 계곡이 유명한 백담계곡 또는 수렴동계곡이라 불린다. 이렇듯 설악산에서 내설악의 모든 계류가 흘러들어 곳곳에 폭포와 담을 이루는데 그 비경과 절경이 사계절 변하면서 찾는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다.


또한 이곳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찰인 만해 한용운의 백담사가 있고 용아장성의 비경속에 봉정암이 자리잡고 있으며 동자승의 일화가 서린 오세암영시암이 있어서 많은 불자들을 비롯한 산악인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10. 백담사

1)백담사의 역사와 유래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647년(진덕여왕1)

자장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한계령 부근의 한계리에 절을 세우고

한계사라고 하였다. 690년(신문왕 10년)에 불타버려 719년(성덕왕 18)

에 재건하였는데, 《백담사사적기》에 이때의 중건과 관련된 전설이 수

록되어 있다.

2)중건에 관련된 전설

낭천현(지금의 화천군)에 비금사가 있었는데 주위의 산에 짐승이 많아

사냥꾼들이 많이 찾아 들었다. 이 때문에 산수가 매우 부정해졌는데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도 모른 채 샘물을 길어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다.

더러움을 싫어한 산신령은 하룻밤 사이에 절을 설악산 대승폭포 아래

의 옛 한계사터로 옮겼다.

승려와 과객들이 아침에 깨어나 보니 비금사는 틀림없었지만 기암괴석

이 좌우에 늘어서고 앞뒤에 쏟아지는 폭포가 있는 산이 이전과 달라

그 까닭을 몰라할 때 갑자기 관음청조가 날아가면서 “낭천의 비금사를

옛 한계사터로 옮겼노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이 전설은 그대로 전해지며, 이 지방 사람들은 춘천시 부근

의 절구골, 한계리의 청동골 등의 지명이 절을 옮길 때 청동화로와 절

구를 떨어뜨려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구전으로

미루어 보면 한계사를 중창할 때 비금사를 옮겨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3)역사

785년(원성왕 1)에 다시 불탔으며, 790년에 한계사터 아래 30리 지점

으로 옮겨서 중건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984년(성

종 3)에 다시 불타버려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하고

987년 심원사로 개명하였다. 이때부터 조선 초기까지 전승되다가 14

32년 4번째 화재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 그뒤 2년 만에 심원사지 아

래 30리쯤 되는 곳에 법당과 요사채를 세우고 선구사라 하였으나 14

43년에 불타버렸고, 1447년 옛 터의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다시 절을

세워 영축사라 하였다.

그러나 1455년 6번재 화재로 불에 타고 이듬해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으로 옮겨 중건하여 백담사라 하였다.

1772년(영조 51) 다시 불타버리자 1775년 최붕, 태현, 태수 등이 초암

을 짓고 6년 동안 머물면서 법당과 향각 등의 건물을 중건하고 심원사

라하였다가 1783년(정조 7년)에 절 이름을 다시 백담사로 바꾸었다.

근대에 이르러 한용운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

님의 침묵》을 집필하였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

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화엄

실, 법화실, 정문, 요사채 등이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옛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부속암자로는 봉정암, 오세암, 원명

암 등이 있다. 1455년 중건할때 백담사라는 이름이 지어졌고, 만해 한

용운이 저서를 집필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11. 만해기념관

1)소개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 내에 있는 만해 한용운 기념관.

1997년 11월 9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백담사 내에 개관하였다. 한용운이 불교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저술한 《조선불교유신론》과 《불교대전》 원전을 비롯해, 《세계지리》·《영환지략》·《음빙실문집》 등의 책, 한용운의 유묵과 시집 《님의 침묵》 초간본·각종 판본, 1962년 수여된 대한민국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한용운 연구논문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만해의 출가와 수행, 3·1운동과 옥중투쟁, 계몽활동, 문학활동, 신간회활동 등을 분야별로 나누어 한눈에 만해의 일생을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기념관 밖에는 만해의 시 〈나룻배와 행인〉이 조각된 만해시비와 만해두상 조각이 있으며, 백담사 내에는 만해당·만해적선당·만해교육관 등 만해 관련 건물이 들어서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공휴일에 개관하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한편 경기도 광주시중부면산성리 912번지 남한산성 내에도 만해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이 기념관은 1998년 4월 개관하였으며 대지 약 1,700㎡, 연건평 400㎡, 지상 2층의 규모이다. 종합전시실과 교육관·세미나실·자료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약 600점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 밖에 한용운의 고향인 충청남도홍성군결성면성곡리 491번지에 있는 만해생가와 서울특별시성북구성북동 222-1번지에 있는 만해한용운심우장(萬海韓龍雲尋牛莊)도 기념관 역할을 한다. 심우장은 1933년 한용운이 지은 집으로, 1985년 7월 5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12. 만해 한용운의 시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한다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사랑의 측량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랑은 양이 적을수록 좋은가 봐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 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뉘라서 사람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진다고 하여요.

당신이 가신 뒤로 사랑이 멀어졌으면, 날마다 날마다

나를 울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여요.

사랑의 측량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랑은 양이 적을수록 좋은가 봐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 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뉘라서 사람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진다고 하여요.

당신이 가신 뒤로 사랑이 멀어졌으면, 날마다 날마다

나를 울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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