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통과학 돋보기] 800년전 출판강국으로 우뚝섰던 고려 | ||||||||||||||||||
고려시대는 과학기술이 크게 흥했던 시기였다. 청자로 대표되는 고려의 도예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당시 도예는 기술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최첨단산업으로 오늘날 반도체 산업에 비견할 만하다. 청자 못지않게 세계 최첨단을 달린 기술이 바로 고려의 인쇄술이었다. 고려는 출판문화가 매우 발달한 나라였는데 일찍이 방대한 분량의 팔만대장경을 인쇄했다. 또 서양보다 무려 200여 년이나 앞선 1234년 역사상 최초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인쇄했다. 아쉽게도 이 책은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1377년에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고 있다. 고려는 초일류 과학 문화대국이었던 것이다. ◆ 팔만대장경 - 세계최대 대장경판 …4t트럭 70대분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19년(1232년) 초조대장경이 몽고군 침입으로 불탄 후 불력(佛力)으로 몽고침입을 막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대장경판은 고종 24년부터 35년까지 12년 동안 판각됐는데 준비기간을 감안하면 모두 16년이 걸렸다. 이후 몽고 침입,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강점, 6ㆍ25 등 숱한 전란과 외침을 거치면서도 단 한 번도 불타지 않았다. 규모도 엄청나 4t 트럭 70대분에 이르며 총 5200만 글자를 수록하고 있다. 한자에 능숙한 사람이 하루 8시간씩 30년을 꼬박 읽어야 하는 분량이다. 경판 크기는 가로 70㎝, 세로 24㎝ 내외이고 두께는 2.6~4㎝, 무게는 무게는 3㎏ 내지 4㎏이다. 구성을 보면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되어 있다. 경판 재료로는 산벚나무와 돌배나무가 주로 쓰였다. 산벚나무가 74%로 대부분이고 돌배나무가 16% 정도다. 단풍나무, 박달나무, 후박나무, 굴거리나무, 사시나무도 일부 사용됐다. 당시 산에서 베어 온 원목을 바다물에 3년을 담갔다가 소금물로 삶고 민물에서 염기를 빼고 그늘에서 말린 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경판에는 옻칠이 돼 있어 미적 효과는 물론 방습 및 방부 기능, 아울러 벌레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경판 표면에 먹을 바른 후 2~3회에 걸쳐 옻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옻은 여과, 탈수 등 기본 정제만 한 생옻을 사용했는데 칠 두께는 0.06㎜ 정도다.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각은 북위 35도48분, 표고 645m에 위치하고 있다. 장경각 동쪽의 가야산 자락과는 대략 20도, 서쪽 비봉산과는 10도 정도 경사각을 이룬다. 산과 이루는 경사각은 일조량과 직결된다. 맑은 날을 기준으로 했을 때 경판고가 햇빛을 받는 시간은 하절기 12시간(6:30∼18:30), 봄ㆍ가을 9시간(8:00∼17:00), 동절기 7시간(9:30∼16:00) 정도다. 바람의 영향도 고려됐다. 연간 계절풍의 방향은 여름철에는 남동풍이고 겨울철에는 북동 내지 서풍이 많다. 산풍(山風)이 초당 8m 이하일 때는 평행기류의 순풍, 8~15m일 때는 약간 소용돌이가 섞인 평행바람임을 감안하면 판전은 항상 서늘한 바람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할 수 있다. 장경각은 해인사 경내에서 가장 낮은 온도와 다습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수다라장과 법보전의 내부 공간 기온은 온도차가 섭씨 2도를 넘지 않고 상대습도는 통상 80% 정도를 유지하고 건조할 때에도 40% 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극히 드물다. 이는 건조에 의한 경판 변형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가 건축 당시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 직지심체요절 - 최고 금속활자본…서구보다 50년앞서
직지심체요절은 상ㆍ하 2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금속활자본 상권은 현재 전하지 않고 하권 1책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보관돼 있다. 금속인쇄술의 맹아기에 중앙관서도 아닌 지방 사찰에서 만들어진 만큼 활자본 자체의 수준은 썩 높지 않다. 활자의 크기와 글자 모양이 고르지 않고 부족한 활자는 나무 활자로 섞어 사용했기 때문에 인쇄상태가 조잡하다. 당시 금속활자를 어떻게 주조했는지를 기록한 문헌은 따로 전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 기술수준을 감안해 유추해 볼 때 밀랍주조법에 의해 주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금속활자 인쇄술 발명의 기원에 대해선 고려 문종연간(1047∼1083) 기원설, 숙종 7년(1102) 기원설, 예종 15년(1120) 기원설, 충열왕 23년(1297) 기원설, 고종 19년(1232) 이전 기원설 등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에 보관 중인 직지심체요절 금속활자본 책의 크기는 세로와 가로 각각 24㎝, 17㎝다. 다섯 구멍을 뚫고 붉은 실로 꿰맨 선장본(線裝本) 형태로 되어 있다. 종이는 전통한지에 인쇄됐고 전체가 배접되어 있다. 직지심체요절이 갖는 금속활자본으로서 특징을 보면 우선 본문의 항렬(行列)이 바르지 않고 비뚤어져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당시 기술수준의 한계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중에는 글자가 옆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경우도 있다. 인출(印出)된 자면(字面)에서 나타나는 묵색(墨色)의 농도 차이가 심하고 반점(斑點)이 나타나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일(日)이나 일(一) 등의 일부 글자는 아예 거꾸로 식자된 경우도 있으며, 어떤 글자는 인쇄 도중에 탈락된 경우도 있다. 동일 면에서 동일한 활자의 같은 글자모양이 보이지 않는 반면 동일한 활자가 다른 장에서는 사용되고 있다. 글자의 획에 티가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직지심체요절은 왜 프랑스로 건너가게 된 것일까. 1886년 한ㆍ불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 1853∼1922)가 조선에 근무하면서 수집한 고서 및 각종 문화재에 직지심체요절이 포함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수집경로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나,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ㆍ1865∼1935)이 1901년에 저술한 '조선서지'의 보유판에 게재된 것 등으로 미뤄 1900년께에는 이미 수집된 것으로 추측된다. 플랑시는 우리나라에서 수집해간 대부분 고서를 모교인 동양어학교에 기증했는데 직지심체요절은 앙리 베베르(Henri Vever, 1854∼1943)가 180프랑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1950년께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사이언스올 사이트(www.scienceall.com)에서 더 많은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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