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옥천역에 도착하였는데 옥천군에서 공무원들이 나와서 박수를 치면서 진심으로 환대를 해주셔서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몸둘 바를 몰랐다.
서울과 수원에서 합류하여 문학기행 인원은400명으로 9대의 대형버스로 이동하였는데 뒤에 깃발을 들고 있는 분들이 옥천군청 공무원들이 열심히 봉사를 해주셨다.
10:20 충북과학대에서 정지용선생 시 포럼이 있었는데 너무 사람이 많아서 나는 그 대학 주변동산에 올라서 옥천군전경을 구경하러 가는 길에 붉은 꽃이 있어서 그 연약하고 강렬함에 이끌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시간이 있어서 관성회관 전시실에 지용회전을 보았는데 정말 아마추어 같은 작품속에 빼어난 작품들이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정미작/꽃~지다:실크에 파라핀염색> 043-733-0978
<홍승운작> comae@dremwi.com/010-9803-2303
정지용시인의 <향수>시와 연상되는 농민과 함께하는 행복한 소 그림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사실 소의 혀는 얼마나 거친지 언젠가 소에게 풀을 먹여 보는 경험을 했는데 풀을 다 먹고 혀로 내 손바닥을 할틀때의 너무나 거칠어서 비명을 지른 경험이 있는 나에게 홍승운 화가는 위트와 재미를 불어 넣어 황소의 미소가 그대로 내가 느끼게하여 절로 웃음이 나오게 한다.
<김진희작/닥종이 인형>
그림을 통해 화가아 잠시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데 다음 일정인 지용생가 방문이 기다리고 있다.
12:00 정지용 생가와 정지용문학관을 관람
2004년 12월30일자 일부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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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용 |
[서울신문]에 “남한에 있는 아버님을 만나고 싶어요.”라고 전하고 있다.
2001년 이산가족 상봉신청때 북한에 있던 정지용(鄭芝溶·1902∼50) 시인의 셋째아들은 상봉대상자에 아버지를 포함시켜 우리를 놀라게 했다. 한국전쟁 당시 시인이 납북된 뒤 아버지를 찾으러 간 셋째아들은 아버지의 행방을 알지도 못한 채 북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한다.
시인의 가족사 자체에 분단의 비극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셈이다. 정 시인의 사망도 평양감옥에 함께 있다 탈출한 사람이 “감옥에 폭격을 할 때 희생이 됐을 거다.”라고 말해 그럴 것으로 추측케 할 뿐 정확하게 언제, 어떤 과정으로 숨졌는지는 미스터리다.
●정지용문학관과 생가에 얽힌 이야기
시인의 고향 충북 옥천에는 초가로 지어진 생가가 있다. 1988년 정지용이 해금된 뒤 시인을 기리는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다른 이가 살고 있던 옥천읍 하계리 옛 생가 부지를 매입, 지난 97년 4월 문을 열었다. 지난 4월 시인의 큰아들 구관씨가 작고하기 전 그의 고증을 거쳐 건립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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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접에는 시인이 다니던 죽향초등학교가 있다.
운동장 한쪽에 일본식 옛 교사 한동이 서 있다.
2003년6월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 57호로 지정한 교사앞 표지석에는 ‘정지용 시인과 육영수 여사 등을 배출했다.’고 써있다.1926년 건립돼 정 시인이 공부했던 교실은 아니지만 자기 시를 판금조치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이 같은 학교출신이라는 게 좀 아이러니하다.
교사옆에는 육영수여사의 친필
● 정지용 시인의 인간적인 면
시인의 제자인 유수인씨도 “두루마기에 회색 명주목도리만 하고 다닐 정도로 살림이 어려웠지만 전혀 비굴하지 않았고 깨끗했다.”면서 “돈 한푼 없어도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매달리는 여제자들을 데리고 가 외상 밥을 사주기도 했다.”고 전한다.
시인이 고향에 산 것은 휘문고에 들어가기 전인 17세까지.휘문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로도 일했다. 아들 정구관씨는 “성당과 학교, 시 쓰는 것밖에 모르던 양반으로 항상 머리에 시가 들어서 밥을 먹는지 반찬을 먹는지 자신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성질이 굉장히 급해 별명이 ‘신경통’이고,성격이 활달하고 해학이 빼어난 분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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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정지용 시인 생가> |
정지용은김영랑, 유치환 등 시인과 친했고 청록파 시인을 추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박목월에 대해서는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고 격찬했다. 또 ‘보리피리’의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이름과 이희승의 ‘일석’이란 호를 지어줄 정도로 이름짓는 일에도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고향 충북 옥천에서는 1988년부터 정지용 문학축제’를 열려 올해로 21회제를 맞이하고 있고, 제20회 정지용문학상이 맥을 이어오고 있다.매년 8∼9월 중국 옌볜에서 지용제 및 음악제가 열리고 있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부인과 손자, 딸은 남한에, 둘째·셋째아들은 북한에 갈갈이 찢어져 살았지만 정지용 시인의 향기는 고향에 진하게 남아 있다.
정지용 문학관은 체험 위주의 우리 시문학 발달사를 배우게 해 주는 중요한 자료가 잘 정리 되어 있고,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직접 시를 낭송해 볼수 있는 공간이 있고,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초기 시인들의 발표 잡지를 볼수 있는 재미도 좋고 시인의 작품을 직접 볼수 있도록 설치된 것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또한 하계리마을 주민들이 직접 마련한 점심식사 시간은 정말 진풍경이 되었다. 4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육계장과 빈대떡과 함께하는 막걸이로 목을 축이니 거리 장터축제장이 즉석에서 마련되고, 구름 한점없는 오후 시인이 노래한 실개천 옆에서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정담을 나누면서 조용한 시인의 마을 주변을 걷는 재미가 솔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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