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놀라 게이, 2차 대전 때 미국 폭격기 조종사 폴 티베츠 어머니 이름이다. 티베츠는 폭격기 B-29 동체에다 ENOLA GAY라고 페인트로 휘갈기고 이 폭격기를 조종하여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히로시마는 미군이 한 번도 폭격을 하지 않고 아껴둔(?) 멀쩡한 도시여서 당시 그럴듯한 소문이 돌았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살기 좋고 따뜻한 이 도시에 몰래 어머니를 들여보내 신병치료를 시키고 있다고. 그래서 폭격기는 항상 지나가기만 한다고…. 단 한 방에 모든 것은 변했다. 한두 달 전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니, 두 시간 전만 해도 하늘에 구름이 끼어 폭탄 투하 리스트에서 히로시마는 제외됐으니까. 구름이 걷히면서 천당은 지옥으로 변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2년 전 아줌마들이 인터넷에 아파트를 얼마 이하로는 팔지 않기로 결의한 그 등등한 기세. 자고 일어나면 억! 억! 하고 오르던 그 강렬한 머니의 욕망. 지금은 15억원 하던 집을 10억원에 내놔도 문의하는 사람조차 없다니 도대체 집값을 움직이는 법칙은 무엇인가?
FT는 이에 대한 답변을 시도한 바 있다.
'주택시장은 빨리도, 효율적으로도 움직이질 않는다. 오일가격이나 주식가격 변동과는 속성이 다르다. 집은 금융자산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 속에 들어가서 살고 단지 값이 싸게 느껴지거나 너무 올랐다고 해서 단순히 팔 수 있는 자산도 아니다. 한 번 이사하려면 세금, 복비, 법률문제 등이 엉킨 것도 쉽게 사고팔 수 없게 하는 요소다. 집값 조정이 천천히 일어나는 까닭은 한 번 가격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방향으로 진행하는 습성 때문이다. 현재 하락세가 진행됐다면 쉽게 끝나지 않을 게다.
특히 사람들은 이사하기를 꺼리는 습성이 있다. 왜냐? 이별은 큰 스트레스니까. 인간은 배우자 사망, 부모ㆍ자식 사망, 직업 이동, 그리고 이사 순서로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기다린다. 팔 필요가 없는 집은 그대로 둔다.
몇 안 되는 거래가 시장에서 가격을 명확화해주는 뒤늦은 척도(indicator)가 되는 것이다.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려면 거래량을 보는 게 더 낫다. 런던에서 30% 거래가 줄었다면 이는 시장이 이제 아파 누웠다는 증거다.
하락 추세에 접어들어도 가격은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데 만약 거래량이 정상 수준으로 복귀하지 못하면 이제 일은 벌어진다. 지방에서 벌어지는 일도 눈여겨 볼 일.
한 지방에선 오른다는데 그게 단지 철로(지하철)가 새로 개설돼서 그런달지, 다른 지역은 떨어진다면 곤란하다.
하락세는 저가 주택에서 먼저 발생할지 모르나 워낙 싸기 때문에 그 하락폭은 크지 않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임대거나 직장이 없거나 은퇴자들이다.
도심이나 큰 시가지 주택값은 본디 하방경직성이 있어 그 가격이 제자리라 해서 현혹돼선 안 된다. 임대료 상승을 잘못 읽어서도 안 된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일단 미뤄두고 전세를 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락세를 구원해줄 수호천사가 못 되니까.
집주인은 세를 올려 은행빚 갚는 데 쓸지 모르겠지만 그런다고 가격 하락이 보상되는 건 아니다.
상품시장에선 바닥을 확인하는 명확한 사인으로 매물 홍수를 꼽아왔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팔아치워야겠다는 스트레스의 극한점(민스키모멘트 칼럼 참조)을 지나면 새로운 차원의 가격이 형성되는 법칙. 최대한의 공포와 불확실성, 그 순간은 아직 도달되지 않았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그랜빌이 한 말, 즉 '가격은 거래량의 그림자'라는 말이 떠오른다. 주식이든 아파트든 거래량이 확 줄어들면 인간으로 말하자면 갑자기 체중이 줄어드는 것처럼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
FT는 주택은 가격 변화가 느리게 전개된다고 했는데 서울은 급할 때도 많다. 특히 상승기 끝물에 너도나도 매수대열에 동참하면서 그러는데 매우 조심할 요소다. 80년대 후반, 그리고 2005년 이후 급등을 거친 다음 가격 변화는 히로시마처럼 상전벽해로 변하는 패턴을 보이는 편이니까.
이는 서울 자가주택 소유율이 52% 선으로 매우 낮은 데 기인한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머니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고 특히 머니의 볼륨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도 개도국에 문제를 일으킨다. 즉 돈의 세계화다. 중국 상하이나 베트남 호찌민과 하노이 주택값이 최고 60%나 폭락한 데는 외국자본이 들어갔다 썰물처럼 빠졌기 때문이다.
거래량이 가격 변화를 예고하는 인디케이터라는 FT의 지적과 서울 강남에서 2008년 상반기 30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겨우 5건밖에 거래가 안 됐다는 사실 간의 함수관계를 당신은 알고 있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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