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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건강

암 진단 받은 후 정미자씨의‘식이요법 & 마음 다스리기’1탄

“유기농 재료로 된장·고추장 담가 먹고, ‘커피 관장’으로 몸속 독소를 제거해요”
기획·이남희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98년 여름 폐암 진단을 받은 정미자씨는 수술 시기를 놓쳐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만 받았다. 그는 “남은 생명은 6개월”이란 이야기를 들었지만, 남다른 식이요법과 생활요법으로 8년째 건강을 지키고 있다.

정미자씨(63)를 보면, 그가 말기암 환자였다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본인이 병력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저 50대 중반의 건강한 아주머니로 보일 뿐이다.

“인생관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악착을 떨며 살았는데 아프고 나서는 마음을 비웠어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자, 모든 일을 돼가는 대로 내버려두자 했지요. 일주일에 닷새는 가까운 산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나물도 뜯으며 2시간 정도를 보냅니다.”

정미자씨가 폐암 선고를 받은 것은 98년 여름. 그는 당시 경기도 동두천시 버스터미널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해 큰 물난리가 났다. 수해로 집이며 가게가 엉망진창이 된 것. 물난리 뒤에는 한 달간을 밤낮없이 수해복구에 매달렸다. 그런데 그 즈음 몸이 계속 피곤하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기침이 심하게 나왔다고 한다.

“특히 어느 한쪽으로 누우면 마치 천식환자처럼 기침이 끊이질 않았어요. 감기나 기관지에 염증이 오면 열이나 오한 같은 증상도 있을 텐데 그런 증상은 없고 그냥 기침만 계속 났죠.”

그가 심상치 않은 기침으로 밤에 잠을 잘 못 이루자 남편도 병원에 가보라고 재촉했다. 동네 개인병원을 찾아가 증상을 이야기하자 “일단 엑스 레이부터 찍고 보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혹시 폐렴일지 모르니 사흘일쯤 치료해보고, 차도가 없으면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어요. 사흘일 뒤에도 기침이 그치지 않으니 소견서를 써주며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평소 감기 한번 앓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던 정씨는 대학병원에서 소세포 폐암이란 진단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주치의는 그의 상태에 대해 “초기도 아니고 꽤 많이 진행됐다”고 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집착 버리자 마음이 편안해져

“한 푼, 두 푼 모으며 참 악착같이 살았어요. 아이들 셋을 다 서울에서 공부시켰는데 매일 새벽 4시경에 일어나 서울에 사는 아이들의 밥을 해주러 갔어요. 도시락까지 다 싸서 보낸 후에는 다시 동두천으로 와서 남편 밥상을 차려주고 가게로 출근했어요. 그렇게 가게 일 정리하고 집에 들어오면 늘 자정을 넘겼지요.”

정미자씨는 자정 넘어 잠이 들고 새벽 4시면 일어나 다시 서울로 나가는 생활을 20년이나 했다고 한다. 이렇게 피곤한 삶이 지속되니, 신체 저항력이 떨어졌다. 또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간접흡연이 그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한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버스터미널에서 하루 10시간이 넘게 일한 게 화근이었다는 것.

절망의 터널 앞에서 그는 ‘못 해본 것들을 해보고 죽으려면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항암주사를 맞고, 방사선 치료도 받았다. 항암제가 얼마나 독하던지 그와 같이 치료를 받던 환자 중에는 두어 번 맞고 쓰러지는 사람도 많았다. 그 역시 머리가 빠지고 심한 구토에 시달렸다. 두 번째 항암주사를 맞은 뒤에는 백혈구 수치가 너무 떨어져서 주치의가 이런 상태로는 치료를 계속할 수 없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살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항암제를 하도 독하게 맞아서 걷지를 못하고 앉아서 기어 다닐 정도였어요. 그렇게 어렵게 항암주사를 다 맞고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도 항암제 못지않아서 유방이 돌처럼 단단해졌고 등은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암처럼 변했지요. 그런데 결과는 더 악화된 걸로 나타났어요.”

주치의는 정씨에게 “치료효과가 좋지 않아 암 세포가 상당부분 남아 있다. 어느 때라도 재발하면 다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많이 살아야 6개월이라는 소리가 의료진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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