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강덕지 과장의 범죄심리학 노트·마지막회] |
강덕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심리과장 |
사소한 듯 보이는 가정폭력이 훗날 가공할 폭력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면 몸서리가 쳐진다. 가정폭력의 주범은 99%가 아버지들이다. 철없는 아버지 탓에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한다. 따라서 범죄자의 아버지도 함께 처벌받아야 한다. 병든 아이들을 방치한 우리도 같이 벌 받아야 한다. 가정폭력에 희생된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순환고리와 그 위험성. |
부모가 바르지 못하면 아이들도 바르지 못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큰다는 말도 있다. 부모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뒷모습(속마음)은 감출 수 없다. 정상적인 부모도 이럴진대 삐뚤어진 부모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까. 스펀지처럼 여과 없이 부모의 행태를 머리에 차곡차곡 담아두는 아이들.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오직 폭력을 통해서만 화를 해소한다. 그것밖에 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의 폭력 때문에 인생을 망친 범죄자가 너무도 많다. 그중 20대 A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어머니를 살해했다. A를 만나보니 비만이었다. 뚱뚱하면서 살에 탄력이 없는, 마치 물에 가라앉은 시체의 몸이 불어난 것처럼 퉁퉁해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물어보니 어렸을 때부터 당뇨를 앓은 소아당뇨 환자였다. 그 때문에 남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청년으로 성장했다. 겉으로 보기엔 얌전하기만 한 그가 어떤 이유로 어머니를 살해했을까. 소아당뇨와 연관이 있어 보였다. 어릴 때 기억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형과 함께 집에서 쫓겨났어요. 밖에는 비가 내리고, 형과 나는 처마 밑에서 비를 맞으며 울고 있어요. 집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어요. 아버지가 무섭거든요.” 피해자가 피해자를 죽이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물론 두 아들을 수시로 때렸다.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그는 스스럼없이 “아버지”라고 대답했다. 범죄자라도 부모 욕을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허물을 감추는 것이 통상적이다. A는 달랐다. 그는 “아버지가 죽기만을 바랐다”고 했다. “아버지와 마주치는 것이 가장 겁났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에 저녁을 잔뜩 먹고 잤습니다. 아니, 자는 척 했어요.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저녁 때면 으레 폭식하게 됐고, 먹자마자 잠이 들었어요. 중학교 때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쓰러졌어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소아당뇨래요.” 형편이 어려웠던 A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병치레를 한 탓에 친구도 거의 사귀지 못했다. 학업을 마치지 못해 취직도 못했다. 입사시험에선 당뇨 때문에 번번이 떨어졌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한 그는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알아봐야 했다. 그러나 일자리를 얻지 못하자 공원에서 빈둥거리다가 허기가 지면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어머니에겐 일하고 왔다고 둘러댔다. 당뇨병은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다른 합병증으로 번지지 않는데, 수돗물로 배를 채웠으니 병은 더 악화됐다. 취직했다는 아들이 석 달이 넘어도 월급을 가져오지 않자 어머니는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다.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언제까지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날 따라 몸이 아파 방에 누워 있는 A를 보고 어머니는 꾸중을 했다. A는 참을 수 없었다. 일순간 분노가 일었고, 그게 어머니를 본 마지막이었다. 기가 막히지만 피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와 아들이 피해를 당했지만 피해자는 폭력을 가한 아버지가 아니었다. 폭력에 대한 피해는 이렇듯 불쌍하게도 다시 피해자에게 돌아간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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