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마귀 전 5권/한수산/해냄
빼어난 문체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빛나는 작품들로 격찬받아 온 작가 한수산. 『까마귀』는 한수산 작가가 1990년 첫 취재를 시작으로 15여 년의 고투 끝에 발표하는 본격 장편소설로서, 일본 나가사키에 끌려간 한국인 징용공들의 비극적인 삶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인간 개인을 투시하던 작가의 섬세한 눈은 이제, 가려진 역사의 현장으로 시선을 넓혀 그 처절함과 비극성을 일깨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44년부터 1945년 8월은 태평양전쟁의 광기가 극에 달하며, 원폭투하라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반 인륜적인 역사의 시간이다. 주요 무대가 되는 지옥섬 하시마는 전시의 야만성과 그로 인한 한국인들의 고난을, 주인공들이 새로운 미래를 위해 탈출해 간 나가사키는 일본 군수공업체의 집결지로서 원폭투하란 비극적 운명을 잉태한 채,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상징한다. 피를 토하게 하는 '지옥'에서도 사랑이 피어나고, 우정은 뜨거웠으며, 분노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가슴에 품었던 주인공들의 희망도, 필사의 탈출도 다시금 원폭이라는 불가항력적인 무기 앞에 무참히 스러진다. 특히 주인공들의 고난과 함께 세밀하게 묘사되는 전시 일본인들의 처절한 실상은 한일관계의 편협한 도식을 뛰어넘어 가열한 전쟁과 역사의 광기가 모든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바로 뜨거운 휴머니즘에 입각한 작가의 시선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20세기 말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이라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 그 희생자 중에는 조선의 수많은 젊은이들도 있었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 작품은 처연하리만치 서글펐던 그들의 생을 통해 다시금 원폭의 망령을, 전쟁의 광기를 불러내려는 이들에게, 전쟁과 폭력으로는 그 어떤 인간도 구원할 수 없음을 경고한다. 또한 역사의 상처를 겪어보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무고한 젊은 생명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음을 일깨운다.
『까마귀』는, 문학의 진정성을 통해 가려진 역사를 올바르게 복원하여 억울하게 잊혀져간 이들을 기억하고, 역사의 아픔과 상처를 씻어내고자 하는 작가 한수산의 오랜 집념이 담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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