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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탕밥memo

日베끼기와 신토불이 마케팅

日베끼기와 신토불이 마케팅

"목 넘김이 좋다."

몇 해 전부터 유행하는 국내 술 광고 카피다. 처음엔 맥주 광고에만 나오더니 요즘은 한국민 애환이 담긴 소주까지도 당당하게 가져다 쓰고 있다.

이 광고는 "노도 고시가 요이"라는 일본 술광고를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울지 모르나 우리 언어감각으로 보면 이 말은 뭔가 부자연스럽다. 누군가 입속에 술병을 강제로 밀어 넣은 뒤 고문하듯이 꿀꺽꿀꺽 들이키게 해놓고는 옆에서 "잘 넘어가는군" 하고 내뱉는 새디스트적인 뉘앙스라고나 할까.

이걸 무슨 명언(名言)이라도 되는 양 포장한 결과 이제는 인터넷 게시판에 "그 술은 목 넘김이 참 좋은 것 같아요"라는 댓글이 생겨날 정도가 됐다. 생각을 지배하는 언어를 일제가 말살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다.

우리말은 이렇게 인위적이지 않다. 그냥 "술은 술~술 넘어가고 떡은 떡떡(턱턱) 막히네"처럼 자연스럽다.

요즘 자주 목격하는 `직화`구이도 생각없이 가져다 쓴 말이다. 직화는 `직접 불에 대고 굽는다`는 뜻인 일본어 지카비(直火)를 들여온 것이다. 우리는 쇠갈비나 감자ㆍ고구마 따위를 직접 불에다 구워먹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직화니 뭐니 할 필요가 없다.

왜색 표현은 이뿐만이 아니다. 자장면이나 국수를 `특별히` 손으로 뽑았다는 뜻을 강조하려고 붙인 수타면도 그렇다. 수타는 손으로 뽑는다는 뜻인 데우치(手打)라는 일본어다.

기계로 뽑은 면발에 정성이 부족하다고 여겨 `프리미엄 면`임을 강조하고 싶다면 일본인들처럼 새 용어를 만들어 쓸 일이다.

일본인들이 개화기에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새 언어 만들기`였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국 문물을 일본말로 바꿔 국민들이 쉽게 깨치도록 하는 것이 당시는 최대 과제였다.

외국어란 그대로 들여와 써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이해되는 생리를 갖고 있지만 일본은 그 방법을 쓰지 않았다. 새로 맞닥뜨린 사상을 자신들 `생각의 틀` 속에 집어넣어 물리ㆍ화학적 변형을 거치게 한 뒤 새 언어를 뽑아내는 코스를 택한 것이다. 마치 뻥튀기 기계가 단단한 옥수수 알을 맛있고 먹기 좋은 것으로 튀겨 내듯이.

이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금과옥조로 삼은 것이 화혼양재(和魂洋才)다. 서양 문물을 들여오되 그 속에 일본 혼을 심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정신 덕분에 일본은 2차대전 무렵 이미 원자폭탄을 빼고는 미국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갖게 됐다. 나아가 도요타, 혼다 같은 기업은 자동차 제작의 걸음마를 미국에게 배웠지만 지금은 미국을 능가한다.

난생 처음 보는 사물과 제도에 이름을 붙이려면 먼저 그것을 분해해서 속을 들여다보고 메커니즘을 하나하나 규명해 내야 한다.

이는 문리가 틔고 방대한 창조력이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해서 `Democracy`가 `민주주의`로 번역될 무렵 그들은 영ㆍ미 민주주의 운영 토대는 물론 근대국가 작동 원리를 다 깨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주적으로 근대화할 기회를 일본에 빼앗겼고, 사고의 틀인 우리말마저 말살당했다.

창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기회를 놓쳐 버린 한국사의 이 대목에 이르면 누구든 억울하고 분통해서 땅을 치게 된다.

올해로 광복된 지 62년, 사람으로 치면 진갑을 맞았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일본 꽁무니를 따라다니고 있다. 술 광고 하나 제 언어로 못 만들고 과자나 음료 같은 먹을거리 개발에서조차 일본을 베끼고 있다.

1971년 선보인 새우깡은 일본 가루비사의 에비센(1964년)과 맛과 포장도 거의 같고, `국민 드링크`가 된 박카스(1963년)는 일본 다이쇼제약의 리포비탄D(1962년)와 맛과 병 모양이 흡사하다. 과자 `빼빼로`(1983년)는 글리코의 `폭키`(1967년)를 빼닮았다. 초코파이나 칼로리바란스도 모방제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 차음료 `16차`에 재료 한 가지를 더 넣은 `17차`도 자유롭지 못하다.

먹을거리 생산자들은 필요할 때마다 신토불이를 들먹이며 소비자의 애국심에 호소하지만 돌아서서는 이처럼 국민정신에 해를 끼쳤다.

제품을 통해 한국의 혼을 심기는커녕 식민지배의 정신적 경계를 연장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이는 역사에 부끄러울 뿐 아니라 누가 더 창조적인가로 승패가 판가름나는 시대에 국가 장래를 암담하게 만든다.



[전호림 유통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