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효 생가는 참으로 단아하다. 한참 꽃무릇이 피어나 나그네를 반기고, 선생의 제자들의 맥을 이어주는 소리공부 방과 가까이 설립해 놓은 판소리박물관과 미술관이 예향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체험 판소리 박물관으로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 북을 쳐보기도 하고 우리 판소리를 직접 들을 수도 있게 되어 있어서 평소 판소리에 관심없는 사람일지라도잠시 듣다보면 고개를 끄떡임과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신재효 선생의 생가>
동리 신재효선생.
조선 후기의 판소리 이론가·개작자·후원자.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백원(百源), 호는 동리(桐里). 그의 가계(家系)는 본래 경기도 고양(高陽)이었으나, 서울에서 경주인(京主人)을 지내던 아버지 광흡(光洽)이 고창에 내려와 관약방(官藥房)을 경영하면서부터 고창에 살게 되었다. 7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철종 때 고창현감이던 이익상(李益相) 밑에서 이방으로 일하다가 호장(戶長)에 올랐다. 1,000석을 추수할 정도의 부호였던 그는 1876년(고종 13년) 흉년에 구휼미를 내어 이듬해 통정대부(通政大夫) 품계를 받았다.

<판소리 박물관 전경>
향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고창지방 관청에서 열렸던 잔치에 판소리 광대를 포함한 각종 연예인들을 동원했던 경험과 자신의 넉넉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판소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판소리 광대들의 후원 및 이론적 지도자로서 이름이 높았는데, 동편제(東便制)의 명창 김세종(金世宗)이 소리 선생으로 초빙되어 판소리 전문교육을 도왔다.
이날치(李捺致)·박만순(朴萬順)·전해종(全海宗)·정창업(丁昌業)·김창록(金昌祿) 같은 명창들이 그의 지원과 이론적 지도를 받았다. 그밖에 진채선(陣彩仙)·허금파(許錦波)와 같은 최초의 여류 명창을 길러내기도 했다. 그는 장단에 충실하고 박자의 변화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동편제와, 잔가락이 많고 박자의 변화가 많은 서편제(西便制)에서 각기 장점을 취해 판소리 이론을 정립했다.
〈광대가 廣大歌〉에서 판소리 사설과 창곡, 창자의 인물됨과 연기능력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판소리 4대법례를 제시했다. 만년에는 향리직에서 물러나 판소리 12마당 가운데 〈춘향가〉·〈심청가〉·〈박타령〉·〈토별가〉·〈적벽가〉·〈변강쇠가〉의 6마당을 골라 그 사설을 개작, 정착시켰다.
고창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의 이론가이자 개작자, 후원가였던 동리 신재효 및 진채선, 김소희 등 다수의 명창을 기념하고 판소리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택 우측 옆 자리에 설립이 되었다고 한다.
소리가 좋아서 판소리에 입문하여 치열한 공부끝에 득음한 명창들의 사진이 벽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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