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까치가 높이 높이 나르고 있다.
이른 새해 아침에 까치가 집을 짓는 모습을 보고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는 아는 지인의 말처럼 나도 오늘 문득 하늘을 나는 새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늘 이른 아침 출근을 하여 늘 그 시간을 컴퓨터를 켜고 있다.
나의 새로운 장난감 같은 것이 엊그제인데 나의 경우 컴퓨터의 등장으로 진땀을 빼던 기억이 엊그제였는데 지금은 윈도우 환경으로 누구나 심지어 어린 아이까지 어른의 일을 해낼 수 있다. 초인류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니 늙은 사람과 장유유서의 유교문화에서 살아온 오늘날의 내 또래는 젊은 사람에게 아부하거나 아니면 꼴랑한 남은 자존심을 세우느라 점잖을 떠는 날 힘겹다.
결국 나이든 사람이 젊은이에게 가르칠 것이 많이 없어 요즘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니들이 알아서 잘 살아라!!"
이렇게 말을 해도 요사인 아무도 눈 감짝하지 않는다.
정말 알아서들 잘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정작 삶은 얼마나 각박하고 쓸쓸하고 고독한가?
유럽의 자살이 높다고 했는데 이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자살이 높은 나라가 되어 있다.
길가의 쇼우윈도우는 나날이 화려해 지는데 우리네 삶은 크게 변화되지 않는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이다.
길을 가다 소박한 군고구마를 먹던 사람들이 이제는 화려한 불빛 아래서 마요네즈에 버무려진 고구마를 군고구마의 10배이상의 값을 치르고 먹고 있다. 그러면서 기가 막히게 맛있다를 외쳐된다.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는가? 되 묻고 싶다.
순수하고 소박한 음식은 배타하고 서구화된 음식을 먹으면서 건강을, 헬스를 노래하는 사회, 넉넉히 음식을 마련하여 내 이웃이 굶주린 사람은 없는지 나누고자 하는 사람의 시선은 사라지고, 과시와 치장에 섞어가는 한국사회가 참 걱정된다.
나는 늘 말한다.
지금 너가 버리거나, 배 고프지 않아도 먹고 있는 음식을 나눈다면 그 누군가는 배고픔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울안과 울 밖이 소통하던 가난하지만 정이 있던 1970년대가 그립다.
나의 청소년기이기도 하고, 아마도 그 시절 내가 넉넉한 집안에 살아서 그러는 걸까?
내 어머니는 노상에야채장사에게도 야채를 사면서도 끼니 때가 되면 집에 들여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늘 그런 나눔을 실천하기를 꿈꾼다.
이 각박한 사회 분위기에서 나는 우리가 잃어 버린 아름다운 마음을 되 찾기를 권하고 싶다. 우린 너무 나 가지고 있다. 더 많이 벌어서 무엇을 하려는 걸까?
꼭, 우리가 부자가 되어야 하는가?
꼭, 우리가 명예를 얻어야 하는가?
꼭, 우리가 족보에 남는 인물이 되어야 하는가?
며칠 전 TV에 조선 선비가 아내에 준 편지가 무덤에서 발견되어 엄한 유교문화 속에 따뜻한 부부애를 보면서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차라리 지금 그 선비처럼 가정에 충실하고,
오늘 밤, 일기장에 일기 한 줄을 써 봄도 좋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만나고, 자신이 무엇을 꿈꾸고 갈망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나 자신의 본 마음을 만나는 행복한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투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른 아침 아들은 우유사러 가고 나는 출근을 한다. (0) | 2012.01.30 |
---|---|
신비스런 용 그링을 감상하다. (0) | 2012.01.29 |
경동시장을 구경하다 보니 하하하 웃음이 난다 (2) | 2012.01.22 |
함부로 내일을 속단하지 말라 (0) | 2012.01.19 |
오늘의 나 (0) | 2012.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