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임방공지사항

‘연극열전 2’ 관객몰이

“뮤지컬 비켜” 연극의 반격 [중앙일보]

스타군단 앞세운 ‘연극열전 2’ 관객몰이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左)와 ‘서툰 사람들’(中)의 한 장면. 12일 ‘서툰 사람들’이 공연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은 평일임에도 단 한자리도 빈 좌석 없이 꽉 채워졌다(右). [최승식 기자]
“제가 번호표 10번인데 이렇게 나쁜 자리면 어떡해요?”

“40분부터 입장해서요, 죄송하지만….”

서로 먼저 들어가려는 사람들, 진행 측과 승강이가 오가고 고성도 들렸다. 자칫 몸싸움까지 벌어질 태세다. 무슨 일이 터진 걸까. 바로 연극을 보기 위해서란다. 8일 ‘연극열전2’의 첫 작품 ‘서툰사람들’이 공연되고 있는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의 풍경이다. 공연계 최고 비수기라는 설 연휴 기간, 당연히 썰렁할 줄 알았더니 웬걸.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관객들의 치열한 경쟁이 흡사 시장터를 방불케 했다.

객석은 지정석이 아닌, 예매 순서에 따라 번호표를 받고 들어가는 방식이다. 160석 남짓한 객석은 이미 꽉 찬 상태. 15석의 불편한 보조석도 매진이었다. 게다가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빈 좌석을 노리고 대기표를 받은 관객까지 로비를 서성거렸다. 결국 기다리다 입장을 못 해 돌아가는 사람도 수십 명에 달했다. 그야말로 대박 행진. 뮤지컬의 열풍에 숨죽이고 있던 연극이 ‘연극열전’의 깃발을 높이 들고 반격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유료 객석 점유율 107%

연극의 메카 동숭동에 훈풍을 몰고 온 ‘연극열전2’는 지난해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13개의 연극을 서너 개의 공연장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올리는 기획 프로그램이다(공연일지 표 참조). 2004년 처음 시도해 호응을 얻어 4년 만에 부활했다.

이번에도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서툰 사람들’의 유료 객석 점유율은 107%. 정좌석은 당연히 다 찼고 보조석까지 유료 관객으로 채워 점유율 100%를 넘기는 기현상을 일으켰다. 둘째인 ‘늘근 도둑 이야기’ 역시 40대 이상 중년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유료 점유율 104%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아직 개막하지 않은 셋째 작품 ‘리타 길들이기’ 역시 벌써부터 반응이 좋은 상태. 티켓 판매 사이트 인터파크의 예매 순위에서 이들 세 작품이 몽땅 ‘톱10’에 진입하기도 했다. 객석 200석이 안 되는 소극장 연극들이 1000석이 넘는 대형 뮤지컬 ‘맘마미아’ ‘노트르담 드 파리’ 등과 당당히 맞서는 ‘다윗의 기적’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온갖 기록을 세우며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연극열전2’ 흥행 성공의 첫째 요소는 스타의 등장이다. ‘서툰 사람들’엔 다양한 영화의 조연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류승룡·장영남·강성진 등이 출연 중이다.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한채영이 처음 연극에 도전한 것도 눈길을 끄는 요소. 한채영은 공연 직전 발목 부상을 당했지만 1주일 만에 목발을 짚고 무대에 오르는 투혼(?)까지 발휘했다. ‘늘근 도둑 이야기’엔 감초역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박철민·박원상이 나와 코믹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출연진뿐만 아니라 연출자도 스타다. ‘서툰 사람들’은 장진 감독이, ‘늘근 도둑 이야기’는 영화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이 연출해 화제를 모았다.


#“관객과 싸울 뿐”

무대엔 무려 13작품이나 오르지만 지원금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순수 예술을 지향한다는 기존 연극이 관객의 입맛은 전혀 맞추지 못한 채 그저 지원금 타내기에만 급급한 것과는 전혀 다른 전략이다. 홍기유 프로듀서는 “보급로가 차단된 황량한 사지에 버려졌지만 우린 관객과 일대일 백병전을 택했다”고 말한다. 대신 다양한 마케팅 방법을 총동원했다. 우선 패키지 티켓. 20장을 뭉치로 사면 32%, 10장을 사면 25% 할인하는 식이다. 요일별 공략법도 다양하다. 관객이 뜸한 화요일엔 할인율 적용, 수요일엔 ‘수다데이’로 이름 걸고 공연 뒤 스타·연출자와의 대화도 가능하다. 평일 낮 공연 때는 먹거리도 제공한다.


#선순환 구조를 향해

‘연극열전2’는 ‘영화보다 재미있는 연극’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평단의 반응은 곱지 않다. 우선 너무 가볍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연극 본래의 진정성·실험성·진취성보다는 흥미 위주의 기교가 난무한다는 것이다. 김윤철 연극평론가는 “관객을 흡인한다는 것은 100% 높이 평가해야 할 일이지만 예술성 결여는 아쉬운 일”이라고 평했다. 일각에선 “영화 배우 모시기에만 급급하다. 연극 배우는 들러리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극단 미추 박현숙 실장은 “단순히 스타가 이벤트나 일회성으로 참가하는 게 아닌, 스타 출연-관객 동원-또 다른 스타 출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작품 자체의 깊이와 경쟁력으로 관객이 찾아오는 성숙한 단계까지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재밌어야 모인다 … 연극도 스타 만들 터”

프로그래머 나선 조재현

 영화 배우이자 탤런트인 조재현(43·사진)씨는 ‘연극열전2’의 프로그래머다. 단순히 얼굴 마담이 아닌, 직접 작품을 선택하고 배우 섭외에 나선다. 연출자를 설득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팬들의 열기에 한껏 고무된 그는 “아시아로 범위를 넓히고 시상식도 마련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성공 요인은.

“관객 눈높이에 맞춘 덕이다. 평론가와 기자를 위해 우린 작품을 올리지 않는다. 조사 결과, 보고 간 관객의 80%는 만족하는 것으로 나왔다. ‘연극열전’을 브랜드화한 것도 주효했다.”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는데.

“처음부터 연극의 진정성을 앞세웠다면 지금 같은 폭발성을 끌어낼 수 있었을까. 중요한 건 전략이다. 초반엔 코미디 위주의 작품으로 관객이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후반부에 가면 실험적이고 참신한 작품들이 차례로 올라간다. ‘블랙 버드’ ‘라이프 인 더 씨어터’ ‘웃음의 대학’ 등은 해외 페스티벌에서 호평받은 명작들이다. 예술성 운운은 기우다. 중요한 건 그때까지 열기를 끌고 가는 거다.”

-향후 계획은.

“앞으로 격년제로 열린다. 외부의 스타가 아닌, 연극 배우가 스타로 성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박정자·윤석화 선배 이후 연극 스타는 맥이 끊긴 상태다. 고수희·장영남·김영민 등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최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