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일기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을 만나다.
mama77
2021. 8. 30. 08:29
팔월의 끝자락에 서서 아침엔 불어오는 찬 바람에 아~~ 가을이 되고 있구나를 실감한다. 인천에 사는 동생의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니 가족들이 모이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 어머니는 여자로서 복된 삶을 살지 않았지만 당신의 신심과 성실함으로 89세임에도 정정하시다. 이른 아침 운동을 하고 아침 식사를 드시고 한 번도 인맛이 없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디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당신이 생각이 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도 어머니 연세의 여성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기도 하다. 독립적이고 활발하고 누구와도 얘기에 거침이 없고 아직도 동대문시장에 가서 멋진 옷을 사서 입을 줄 아는 센스까지 있다.
어쩌면 그런 열정과 강인함이 어머니의 장수 비결이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받는 것은 유전자 밖에는 없다. 그래서 그녀를 바라보는 나는 어떤 때는 측은함과 때론 미운 마음이 있다. 그렇지만 나도 어른으로 살아 보니 참 성숙하게 그리고 복되게 삶을 살기란 그렇게 녹녹치는 않다는 것을 안다.
삼남매가 차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어제 파주, 문산, 연천을 유람했다.
철원은 마라톤을 위해 매해 갔지만 볼 일만 보고 뒤돌아 왔기에 연천은 새로운 느낌이다. 아직 벼가 다 익지 않았지만 부분 누런 빛깔과 초록 논이 참 아름답다. 옛 시절 같으면 북한 땅이나 진배없던 곳이 이제는 온정 지구라는 신도시가 있고, 자유로, 통일 전망대, 출판단지, 통일동산 등의 이제는 어떤 가능성을 내포한 지역으로 거듭 성장하고 있다. 동생은 이곳을 자전거로 두루두루 알고 있으니 오늘의 베스트 가이드가 되어 멋진 풍광을 안내해 준다.
나는 무엇보다 고구려와 백제가 싸웠던 격전지인 임진 강가의 호루고루성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임진강의 강폭이 넓음에 놀랐고, 임진강 근처까지 친정아버지가 방문하여 그 시절(1970년대)에 회를 먹으려 다녔다는 데에 놀랍다. 지금이야 어디인들 다 다니기 수월하지만 그 시절은 방공의 시절이었을 텐데 아마도 아버지는 머리를 쉬고 싶어 임진 나루에 있는 해물탕을 잡수시고 흐르는 물줄기에 근심을 풀어놓았을 것 같다. 잠시 머리에 스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떨치고 호방한 재연 폭포를 보러 갔다.
폭포는 50만년전으로 올라가서 물의 침식으로 서서히 절벽이 되고 그리고 오늘의 폭포로 장엄함을 보여 주고 있다. 나는 폭포를 바라보면서 50만 년이란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세월이다. 고작 100년도 못 살고 가는 인간이 의연하고 웅장한 폭포 앞에서 잠시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왔을까?를 묻는다. 퇴직에 앞서 남은 10년의 기회를 어떻게 살아 내는 것이 좋은지를 문득문득 생각하게 된다. 마치 내가 다시 청년이 된 기분이다.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 가을에 마지막 여름 여행을 가족과 마치고 나는 새로운 가을 속으로 내 삶의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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