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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흐린 날의 나

비가 올 듯이 흐린 날의 연속이다 보니 몸도 찌붓하고 마음도 산란스럽다. 벗과 긴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막상 전화 수호기조차 들고 있을 기운이 없다. 모두들 아니 나 자신이 상당히 이기적인 까닭에 그냥 짧고 가볍게 전화를 끊고 나니 왠지 마음이 허하다. 사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내 몸이 내 마음을 따라가지를 못한다.  아마도 친구가 좀 이상하게 여길 것 같다. 그렇다고 미주 왈 고주 왈 내 상태를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헤아려 이해해 달랄 수밖에....

친구 사이도 소연하고 마음도 곡 붙들어 매어줄 거리가 없는 요즘, 나는 너무 허한 마음을 스스로 부어 메고 있다. 항상 그러하듯이 나는 그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고, 그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하고, 그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 한 번도 이기적이게 나 자신을 챙기지를 못하는 사람이다. 나 자신을 버리고 일을 할 때가 나는 모든 것이 술술 풀린다. 아마도 전생에 나는 많은 빚을 지고 살았던 사람인 것 같다.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섬김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는 가끔 "나 자신이 참 잘못 살았구나"하는 탄식을 할 때가 많다. 기왕이면 나도 좀 그 누군가에게 섬김을 아니 적어도 측은지심의 상대가 되었으면 한다. 

시어머니 이후로 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요양원에 계시는 분을 내가 어찌할 것인가? 산다는 것과 살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냥 살아 있음에 감사를 하여야 하는 걸까? 속절없이 피어난 꽃을 바라다 본다. 아마도 내가 그 꽃을 바라봐 주지 않으면 그 꽃은 세상의 의미가 없는 걸까? 한 집에 살아도 그 꽃을 바라보는 것는 나 뿐이다. 주말내내 꽃에 물을 주고 꽃을 바라보고 간혹 해빛을 받아 보았다. 나도 해를 바라보면서 해처럼 해밝게 살아내고 싶다. 내 자신에게 허락된 만큼 살아내고 싶다. 

최근 나는 간절함이 무엇인지를 잊고 좀 혼란스럽다. 남의 나의 업무와 내가 마지막까지 수행해야 할 일들에 대해 다시 재 정리를 하지 않는 한 하루에도 여러 번 날씨가 바뀌듯 내 마음도 흔들리고 혼돈 속에 있을 것 같다. 세상사가 너무 시끄럽고 버거워서 내 정신을 추스르고 살아가기가 너무나 어렵다. 이런 미혹한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내는 것이 옳은 것일까? 신의와 도덕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바른 정신을 갖고 살기 어려운 요즘. 참으로 막막하고 답답한 시절을 나는 살고 있다. 지난주 묘지에 다녀온 뒤로는 더더욱 마음이 어수선하다. 아마도 나도 이제 죽음이란 단어가 멀리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잠시 잊었던 망상들이 나를 괴롭힌다. 

사는 동안 마음을 부여잡고 단단하게 붙잡고 내 길을 찾아가야 할 텐데.... 오랜 감기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무겁지만 이틀을 푹 쉬고 일어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나는 나로 돌아간다. 세상사를 살아가기 위해 나는 또다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소중하고 귀하게 살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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