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보면 자신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는 사라지는 때가 있다. 양보하거나 좀 참다 보면 슬금슬금 모든 영역을 침범당하는 것 조차 모르고 서서히 젖어 드는 것이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요사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공으로 모든 삶이 흔들리듯 삶을 살았으나 헛 삶을 살았다는 자각이 요즘 든다. 한번도 뒤돌아 보지 않은 살아 온 나의 무지이다. 요사이 나는 내 가정에 충실하려 한다. 하나라도 맛난 것을 챙기고 내 집안을 더 화사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걷기를 시작한 것이 나의 삶의 윤활유가 되어 주고 있다.
동료가 뇌종양으로 수술을 지난 월요일 받았다. 그리고 동료이자 상사였던 이 분을 내가 너무 많이 참아 주었던 것 같다. 다 자신의 마음대로 했는데 정작 그가 왜 병이 났을까? 어쩌면 그가 좋은 판단을 하였기에 나도 그의 뜻을 따랐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순종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순종은 종교적 차원이지 업무를 하는 공간에서는 치열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싸우기 싫으니 양보하고, 부딪치기 싫으니 넘어가고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오늘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지난 3월에 있었던 2개의 해프닝과 동료의 질환으로 나름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추구하였는가? 등등의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정년을 1년 앞둔 나로서는 참 좋은 화두를 잡은 샘이다. 다, 코로나 덕택에 잠시 놓아던 일들을 다시 곱씹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다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을 때가 있고, 다 내어 주면서 서러울 때가 있다. 사람은 성장하려는 본능이 있다. 나도 그 성장하려는 사람들을 이끌어 주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성장하려는 자를 밀어주고 나는 아래로 낮아지는 연습을 해야 할 때이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잊혀져 가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생각한다.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내가 없으면 지구가 달라지나? 절대 그렇지 않다. 세상은 모두 정상으로 돌아가는 까닭은 모두 한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도에 한 사람 정도 하차하였다고, 세상은 돌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잘 인수인계를 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서서히 준비할 때가 온 것이다. 사실 말년엔 좀 편하고 싶었다. 그러나, 추가로 일을 더 하려 들지 않는 직원들과의 삿바싸움이 싫어서 그리고 그들을 강제로 억압적으로 하고 싶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나는 열심히 일을 시행했던 것 같다. 그냥 일이 보이기에.....
참 허달하다. 그러나 그러기엔 사치다. 지금은 최선을 다해 마지막 에너지를 살려서 비상사태에 대응하고 남은 직원들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나의 살과 나의 에너지를 그리고 나의 열정을 직원들과 공유하고 나의 길을 다시 계획할 때이다. 추수가 끝나고 빈 들판에서 내동댕치 처진 허수아비처럼 되는 것이 나의 목표인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사명을 다 한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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