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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종로 5가 꽃 시장

주말 종로5가 꽃시장에 나갔다 왔다. 한달 내내 미루어 오던 슬리퍼 사는 일과 코로나로 시내의 풍경은 어떠한지 궁금증도 있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기분으로 동대문으로 향했는데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꼈다. 종로5가 꽃시장은 기존의 약국 앞 쪽이 아닌 동대문 옷감시장 건너편 동숭동 방향으로 터전을 잡고 있었다. 늘 가던 대로 걷는데 길 건너 꽃들이 길을 따라 있어서 무심히 길을 건너 보니 긴 꽃시장 행렬이 있다. 이번 꽃시장 터가 꽃을 감상하기에는 적격인 곳에 자리를 잡은 듯하다. 지난 금요일 꽃을 사기 위해 상일동 꽃 가게를 들렀지만 6시가 넘은 시간이라서인지 상인들이 꽃을 거두고 있어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일 꽃거리 맞은 편에 있는 업소용 마트에서 들러 신선한 회와 생선을 사들고 집으로 철수를 했다.

 

그런데 종로5가 꽃시장이 상일동 보다 꽃 값이 더 싼 것도 있으니 참 아이러니 하다. 정말 꽃을 좋아하는 사람과 꽃이 좋아 꽃 장사를 하는 사람이 만나면 꽃의 가격은 상관이 없는 듯하다. 여러 꽃집이 있지만 유독 한 집에 사람이 많아서 그곳을 둘러보니 꽃나무 위주로 꽃을 팔고 있다. 사실 나는 꽃나무를 살 생각은 없었는데 주인장이 방문한 손님과의 대화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상인의 꽃나무를 더 바라보게 된다. 그 가게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빨간 동백꽃이었다. 코로나로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데 이미 남해에서는 꽃이 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철이 지난 서울에서 붉은 동백과 흰 동백 꽃을 만나고 보니 나도 모르게 그 동안 그리웠던 친구를 만나듯 하였다.

 

원래 사려던 꽃을 찾기 위해 한 바퀴를 돌았다. 시장이란 사려던 것 외에도 눈에 끌리면 사는 속성이 있다. 나는 지난해 사지 못한 라벤다와 치자꽃을 사고 라벤다 가게에서 꽃 개화를 돕는 꽃 영양제도 하나 샀다. 그리고 베란다에 심어 먹을 케일과 상추, 토마토 모종을 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다시 아까 눈이 마주친 동백꽃 나무집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빨간 동백이 아마도 나를 홀렸는지 아니면 주인장의 말이 나를 홀렸는지. 어느새 나는 그녀에게 내가 예쁘게 바라다 본 동백 꽃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나는 이문이 없어도 팔아요. 그래서 내 가게는 아주 잘 되지요. 꽃을 많이 팔면 나도 좋고 손님도 좋으니, 나도 절로 좋지요.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갈 때 짐이 없어요."라고 말을 한다. 욕심없는 마음에 절로 탄복이 난다. 그리고 조금 덜 가짐으로 여러 사람과 기분 좋게 장사를 하는 그녀의 얼굴과 손을 바라다 본다. 나이에 맞지 않은 청아한 눈빛과 소박한 웃음이 있다. 아마도 그녀가 살아가는 방법인 것 같다. 주섬주섬 꽃을 사다 보니 제법 짐이 무거워졌다.

집에 돌아와 분갈이를 시작하고, 화분을 닦다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다. 주말의 나른함이 온몸으로 느껴졌지만 마음은 행복한 꽃 부자가 되어 나만의 봄맞이로 마무리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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