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연다.
지난 오후 우박이 내렸다는데 어쩌면 내 마음에도 우박이 내리고 있섰는지 모른다. 사실 이번 주 들어서 마음이 좀 우울하다. 평소 하지 않던 일도 했다. 그동안 소식을 전하지 않은 친구와 친지에게 전화, 문자, 사진 공유 등의 일상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었을까?
가끔 나도 모르게 전화를 많이 한 날은 내가 좀 허해진 날이었던 것 같다. 산주에 홀로 사는 사람은 어떤 고독을 느낄까? 가끔 산속 오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취재한 방송을 보면서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때때로 얼마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면 오지를 선택했을까? 하는 두가지 마음이 든다.
가장 보기 좋았던 사람들은 한의사가 치유를 돕기 위해 오지에서 치료를 하면서 도움을 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만약 내가 오지에 산다면 나는 어떤 모습을 살아 낼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사람을 너무 좋아 하기에 오지에 맞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삶이 더 멋있어 보이는지도 모른다.
가끔 산중의 절집에 가면 그 아름다운 풍경과 그윽한 향내음이 참 좋다. 힘겹게 올라서 그 절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인지, 아니면 내 육체적인 한계와의 싸움 속에 기진 맥진하여 올라서 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가끔 설악산 오세암이 참 그립니다. 미역을 등에 지고 오르던 사람들 속에 끼어 해가 채 뜨지도 않은 산사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공양을 먹던 그 순간이 참 행복하고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내 마음의 고향은 산사이다.
내 어릴적 마이산의 탑사의 석양 속에 들었던 목탁소리와 산 울림이 내 마음의 고향이고, 오세암 좁은 방에서 사람들의 발 냄새와 향내가 어우러진 그 고약했던 1박이 내 마음의 고향이다. 내 추억의 사람들은 냄새와 향기와 울림으로 남아 있지만 이런 것들이 내 마음의 보물이고 재산이다.
시정 잡배들 같은 일상은 그래서 나에게는 때때로 권태로운 일상이고 지루한 삶이라는 느낌이 있다. 나도 시정잡대이고 나도 속물이기 때문이다. 잔잔히 흐르는 계곡의 물줄기처럼 나도 이렇게 흘러 갈 것이다. 때때로 상처로 울기도 하고 때론 기뻐서 눈물도 흘리면서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나이기에 나는 날마다 여행을 한다. 그러기에 내 삶은 풍성해진다. 내가 간직한 감동과 내가 가진 기쁨은 나와 더불어 늘 함께 하기에 나는 산 냄새를, 고혹한 산사를 휘감고 도는 기운, 이른 아침 세상을 깨우는 목탁소리처럼 나는 내안의 울림을 기억한다.
달달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나는 오늘 하루를 또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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