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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열무에 눈이 멀다

이웃이 떠난 자리에 그가 심어 놓은 야채가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냥 처음엔 아주 작던 것이 꽃이 피어 날 정도로 자라고 있다. 그 옆의 상추마저 시절을 만나 풍성해지고 있다.

지난 5월 이사를 위해 냉장고 털어 먹기를 하니 근 2달을 시장을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놀랍도록 냉장고에 먹을 것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이사시 냉장고가 비어 있어야 하기 열심히 먹고 먹으면서 내내 아쉬웠던 것은 햇 열무김치를 먹고 싶은데 새롭게 김치를 담아 먹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불편이었다.

 

아는 지인과 식사를 하다 열무김치를 먹었는데 어찌나 맛이 있는지 맛나게 먹다 그만 혀를 씹히고 말았다. 혀를 먹을 정도로 급히 맛나게 먹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열무김치를 담아야지 하고 벼르고 있는데 바로 퇴근길에 내가 살았던 집앞을 지나고 있는데 이웃이 남기고 간 열무가 내 눈에 보였다.

시댁에 살던 때 뒤곁 텃밭에서 막 딴 것으로 어머니가 맛나게 김치를 담아 여름내내 더위를 식혀던 그 열무가 바로 내 눈에 보였으니 나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열무를 그리고 애 배추를 뽑는데 그 감촉이 참 부드럽다. 

이상하게도 집에서 심은 야채는 보드랍고 그 맛도 향기도 진한지 알 수가 없다.

 

건강 생활을 추구하려면 꼭 텃밭을 가져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텃밭이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야채를 마트에서 사면 외형은 분명 똑 같은데 맛과 풍미는 전혀 다르다. 아마도 화학성분 비료를 사용한 것과 사용하지 않은 것의 놀라은 차이일 것이다.

오늘 내가 열무과 상추와 애배추를 뽑은 것은 일종의 서리일까? 아니면 도둑질일까?

어쩌거나 나는 이사간 이웃의 아주 작은 상자 밭의 야채를 가지고 김치를 담을 것이다.

 

열무가 내 눈을 뒤집고, 열무가 내 혀를 씹이게 하고 올 여름 이른 더위가 나를 미치게 한다. 열무김치를 담아 주말에는 사람들과 모여서 시원한 열무 김치 국수를 말아 먹어야겠다. 이른 더위지만 내가 이사한 곳은 도심치고 정말 조용하고 여전히 새소리를 들으면 눈을 뜰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다.

그리고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가 전에 살았던 고덕 집 앞에도 공중전화 박스가 있었는데 이번 집 앞에도 공중전화 박스가 있다는 것이다.

같은 단층 아파트에 같은 3층에 거기다 공중전화 박스까지 있으니 이사를 하였지만 지난번 그 집에서의 삶처럼 큰 변화를 느끼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다.

 

친구가 찾아온다기 나의 새집을 알려주다 발견한 묘한 공통점에 한 밤중에 보고 계약한 집이 이만하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변화나 큰 변화나 변화하는 세상에서 내 터전만이라도 변하지 않고 차분하게 살아 갈 수 있음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오늘 하루도 열무김치의 아삭하고 시원함처럼 이웃을 불러 가볍게 비빔밥을 나누는 여유로운 하루이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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