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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나, 살아 있네

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 왔다.

지난 추석 전에 만났던친구와 오랫만에 내가 좋아하는 횟를 먹으러 회집으로 갔다. 가게 주인이 바뀌고 값은 비싸졌지만 밑반찬과 무엇 보다 회가 싱싱하여 돈이 아깝니 않았다. 마음 편히 시원한 매운탕을 먹으니 그 동안 아프고 힘들었던 것들이 조금 수구러드는 기분이다.

친구와 차를 마시고 인접한 길동시장 끝무렵 파장 전의 시장가를 걸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현장인 시장 나는 몸이 너무 지치고 우울하다는 생각 좌절하는 마음이 생겨 날 때면 시장 길을 걷는다. 내 우울과 내 생각이 사치라는 것을 깨닫고 현장의 울림이 나를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해 준다. 시장은 군중이고, 민중이다.

나는 이들의 기운을 받아 다시 내 자리에서 다시 신명을 돋우면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아무래도 나는 난장, 마당놀이, 탈춤 등의 우리 신명을 받아야 힘을 받는 듯하다. 친구와 부른 배를 두두리면서 싱싱한 과일 그리고 다양한 옷들을 구경하면서 적당한 말놀이도 하면서 시장 길을 걷고 두어가지 물건을 사서 들고 있을 때 쯤 나의 바오로가 전화를 한다.

"엄마, 어디야?" 잠시 잊었던 아들이 지금 나에게 함축성 있는 어디야에는 이런 내용들이 숨이 있다. "맛난 것 좀 사와, 지금 입이 심심해, 기왕이면 스프라이즈 한 것으로 준비해줘" 등등의 말이 함축되어 있다. 늘상의 말을 통해 우리는 이심전심인 것이다. 사프라이즈세대와 나는 너무나 다른 세상을 살아 왔다.

우리 부모님이 주시면 받고 안 해 주시면 없어서 못해 주시나 보다 등으로 알아서 해석을 하고 살았지만 지금 세대는 무엇을 해도 놀라지 않고 무덤덤하다. 늘상의 풍족한 음식과 늘상의 주어진 자유와 노력을 왜 해야하는지 조차 생각이 없다.

사실 나도 이 나이가 되어 보니 경쟁, 노력, 열심 뭐 이런 것들이 사실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너는 행복하니?", "넌 지금이 좋니?"라고 물었을 때 "응, 그래."라는 답이 나오면 그걸로 족하다.

옛 사람이 안분자족이라 했는데 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다지 나쁘지도 그다지 높지도,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아니니 그만하면 된 것이다.

나는 내 주변에 벗이 그다지 많지 않다. 아마도 화려함을 멀리한지가 오래되어서 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외형적으로 과시할 것도 보여 줄것도 없다. 단지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나는 나쁜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상당히 명랑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는 내가 친절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사람에게 나를 다 보여 줄 수는 없다. 또 세상 사람들에게 모두 다 친절해 줄 수은 없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닌 까닭에 그런 신변의 무엇으로 보여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나 이기를 즐긴다. 내 방식과 사고가 싫다면 만나지 않으면 된다. 괜시리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려 힘든 삶을 자청하고 싶지 않다. 삶은 온전히 나이기를 소망한다. 

맨 정신으로 나자신을 찾기도 버거운 세상에서 외향적인 거울을 들이대고 살고 싶지 않다. 기분이 좋아 히죽거림도, 기분이 꿀꿀해서 씁슬해도 그것이 나 인것이다. 

10월 행사를 준비하고 마치기 위해 애쓰는 요즘 나는 잇몸 수술, 자궁 경부의 조직검사, 코피 등의 신체적 어려움도 있지만 무엇 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아프다. 주말 내내 깊은 잠에 빠졌다. 나의 몸은 나를 안다. 내가 정말 쉬어야 할 때 고맙게도 나를 잠에 빠지개 한다. 모든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내려 놓고 주말 내내 깊은 잠을 자고 나니 마음도 몸도 조금 가벼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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