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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촉각 그림책 낸 화가 엄정순씨

점자촉각 그림책 낸 화가 엄정순씨

"손으로 만지면서 가슴으로 느끼는 책이죠"

"눈을 감고 천천히 읽어보세요. 리듬과 움직임에 자연스레 빠져들 겁니다." 화가 엄정순(47) 씨가 눈을 감고 읽을 수 있는 특별한 그림책 '점이 모여 모여'(창비)를 펴냈다.
'점이 모여 모여'는 시각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점자촉각 그림책이다. 그림이 도드라져 있어 손가락으로 만지며 읽을 수 있고 글마다 점자 표기도 함께 실려 있다.

아코디언처럼 양쪽으로 길게 펼쳐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이 그림책은 양쪽 면에 두 가지 이야기가 실려있다. 앞면에는 점에서 선, 선에서 높은음자리표가 탄생하는 이야기, 뒷면에는 점에서 선, 선에서 면이 모여 하트 모양이 완성되는 과정을 담았다.

이 책과 함께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나무의 이야기를 담은 점자촉각 그림책 '나무를 만져보세요'(송혜승 지음. 창비)도 함께 출간됐다.

"눈으로 읽고 손으로 만지면서 가슴으로 느끼는 책입니다. 점과 선 같은 기본적인 요소를 가지고 몸의 체험을 유도하죠. 이야기가 간단할수록 함축적이기 때문에 일부러 군더더기를 뺐습니다."

그가 점자촉각 그림책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시각장애 어린이들을 만나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아이들에게 매력을 느낀 엄씨는 그들과 함께 다양한 예술활동을 하는 '한국시각장애인예술협회 우리들의 눈'을 창설했다.

"비장애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그림책은 넘쳐나는데 시각장애 아이들을 위한 이미지 책이 너무 없더라고요. 외국에는 주류 무대에서 활동하는 시각 장애인 예술가가 꽤 많거든요. 우리 아이들 중에도 그런 예술가가 충분히 나올 수 있는데 이들을 위한 이미지 책 하나 없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죠."

시각장애 아이들의 중요한 소통수단인 '촉각'을 이용한 책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한 그는 5년 간 아이들의 '보는 법'을 관찰하고 약 5년 전부터 '샘플 촉각 책'을 만들어 시각장애인 학교 등에 무료로 보급해왔다.

"촉각 책이 전문화된 선진국은 있지만 이번 경우처럼 비장애 어린이들도 대중 서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어요. 시각장애 아이들에게도 서점에 가서 자신들이 볼 수 있는 책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세상에 문이 하나 열리는 기분일 겁니다."

점자촉각 책이라는 아이디어는 시각장애 아이들에게서 출발했지만 엄씨는 이 책이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책"이라고 강조했다.

"손가락을 따라 책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울 수 있고 자기 만의 이야기도 만들 수 있어요. 점과 선과 면이 모여 하트 모양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다가오는 밸런타인 데이에 연인에게 선물해도
좋지 않을까요?"

24쪽. 1만5천원.

nanna@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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