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짧은 문자만 보아도 눈물이 맺힌다.
놀고 먹다 보니 마음의 사치에 젖는다. 마음을 추술리고 추수리면서 하루를 기도로 시작한다. 어제 아들의 도움으로 머리를 감고, 몸에 테이핑 한 후 바가지로 양팔에 물을 끼얹는 호사도 누렸다.
평소 샤워를 하면 몸의 피로도 사라졌는데 10일을 씻지 말라니 한 여름이 아니길 다행이다.
오늘은 앉아 있는 연습을 위해 아침 해살을 받을 겸 버스를 탔다. 버스는 낯선 거리로 나를 이동시켰다. 지하철은 답답하고 햇살을 받고 싶은 충동에 지하철에서 나와 아무 버스나 탔다.
버스는 독산동, 보라매공원을 지나고 있다. 서울에 살면서 한번도 살아 보지 못한 낯선 곳이다. 사람은 자신의 터전으로 머무는 곳이 정말 뻔한 것일까? 마치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기분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듯 나의 버스 여행은 낯선 거리를 바라다 보면서 내가 평소 만나는 사람들과 길에서 또는 차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어쩌면 저리도 낯선 것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오래 전 각기 다른 터전에 살던 부족들이 타 지억에서 나타난 부족을 죽이고 살육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제 세계는 하나가 되어 피부색도 인종도 종교도 가리지 않고 다원화가 되어 가는 세상에서 나는 이렇게 서로 가까워지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불행을 가져 오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된다.
아직도 오지의 여행가들이 들려주는 여행기를 보면 나는 무한한 자연 속에서 해맑게 웃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그 곳에 있어 주어 너무나 고맙다는 생각이 듵다. 내가 능력이 이다면 나는 자연 그대로의 터전에서 나의 노후를 보내고 싶다. 돈 걱정하지 않고 놀고 싶은면 놀고 헤엄치고 싶으면 헤엄을 치면서 내 몸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
무엇을 위해 살아 왔을까? 꼭 자식을 챙겨야 하는 걸까?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도덕이라는 잣대에서 내가 순종하고 열심히 살았다고 진정한 나의 삶일까? 아마존의 눈물을 보니 그 곳에서도 오염으로 여자들이 유방암을 앓고 있고, 외부 문명의 바이러스인해 죽어간다고 한다. 새도 사람도 짐승도 아닌 삶을 사는 원주민들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동질감 보다는 나는 외계인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생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전생의 모습일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아들이 걱정하는 전화가 왔다. 나의 외출이 너무 긴 시간이라 그랬을까?
나는 내가 아는 전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요즘 나는 까만 옷을 입고 찌그러진 신문지 같은 모습의 서울의 풍경이 싫다. 아마도 내가 직장을 나가면서 매일 매일 지하철을 탄다면 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다행히 나는 걸어서 출근을 하고 가끔 시내에 나가기 때문에 오늘 내가 보는 풍경의 사람들이 좀 무지개 색깔처럼 맑았으면 한다. 오랜 불황 때문일까? 아니면 유명메이커 신드롬에 빠진 사람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너무 비슷 비슷한 옷을 입고 지루해서 쩔쩔매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가난하지만 해맑은 아시아의 소수민족의 사람들의 얼굴을 꿈꾼다.
문명인이 아니어도, 대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해맑은 웃음이 그리운 도시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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