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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사진

질마재 따라 걷는 ‘바람의 백리 길`/고창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어대던 소쩍새는 고창의 가을을 수억 송이의 국화꽃밭으로 물들였다. 가는 길목마다 일렁이는 노오란 국화꽃, 누이의 얼굴 고운 꽃으로 그려진 국화마을, 시심(詩心)을 한껏 자극하는 호숫가 둘레길, 미당 서정주를 키워낸 ‘팔할이’ 바람을 만날 수 있는 질마재까지…. 문화생태탐방로인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 길’ 에서 만나는 고창의 명소들은 울긋불긋 망울을 터트린 국화꽃 향기와 한데 어우러져 한 편의 시를 완성해낸다. 누구나 시인이 되는 가을, 고창의 질마재길을 걸어보자. 가을 서정을 노래한 시인도 만나고 코끝을 간질이는 진한 국화향도 가슴에 품어볼 수 있는 길, 질마재. 스쳐 지나는 모든 것들이 시의 멋진 소재가 되어줄 테니.

호숫가 둘레 따라 걷는 자연의 숨길


국화꽃과 단풍으로 물든 질마재길은 고창,질마재 따라 100리길의 백미로 손색이 없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에서 천년고찰 선운사까지 ‘고인돌 · 질마재 따라 100리길’ 은 그야말로 고창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나 다름없다. 그 중에서도 3코스인 질마재길은 가을 서정을 즐기기에 더 없이 좋다. 질마재길의 시작은 연기마을 입구에서부터다. 시골마을의 정감어린 풍경은 농로를 지나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에서도 배어나온다. 마을에서 출발해 얼마 안가 만나는 분청사기요지는 15~16세기 청자를 만들던 분청사기 가마터로 연꽃무늬와 모란무늬 등 독특한 무늬가 그려진 대접이나 접시, 항아리 등이 발굴되었던 곳이다. 긴 세월이 지난 지금, 과거 도공들이 서로의 재주를 겨루며 접시 하나 대접 하나 손수 만들던 곳인 요지는 온데간데 없다. 오로지 쓸쓸한 바람만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질마재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면서 도착점이기도 한 연기저수지에는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이 그대로 담겨있다.단풍에 물든 나무, 바람에 서걱대는 갈대들, 고운 자태를 뽐내는 코스모스 군락과 향기로운 국화꽃의 하모니에 나비와 잠자리떼들은 물론 지나는 객들의 마음까지도 한껏 달아오른다.


바위 틈, 위태롭게 선 작은 암자 소요사


위 왼쪽 : 산림경영숲 쉼터, 위 오른쪽 : 갈대와 어우러진 연기저수지의 풍경, 아래 : 작은 암자 소요사


이윽고 쉼터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산림경영숲 쉼터다. 잠시 길을 멈추고 이 곳에서 차분히, 그리고 오래도록 풍경을 감상하라고 만들어놓은 휴식공간이다. 9월 중순 쯤이면 이 쉼터 가득 빠알간 꽃무릇이 온 천지에 피어난다. 비록 꽃무릇은 이미 지고 없지만, 저수지라기 보다는 깊은 산속의 호수라고 해도 무방하리만큼 주변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기에 그까짓 아쉬움은 쉽게 떨쳐버릴 수있다. 쉼터에 앉아 흘러내린 땀도 식히고 나니 이내 몸이 가뿐해짐을 느끼게 된다. 풍경에 도취돼 걷노라면 어느새 소요사 입구라는 작은 팻말을 발견하게 된다. 차로 왔다면 시동을 끄고 멈춰서야한다. 여기서부터 울퉁불퉁한 오르막을 올라야 소요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턱턱 막히는 숨을 참아가며 길을 오른다. 드디어 소요산에 기댄 듯 작은 암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소요사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1,000년 전까지만 해도 소요산 자락에 8만 개의 암자가 있었다 한다. 허나 지금은 소요사 뿐. 백제 위덕왕 때 지어진 소요사는 유명한 고승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특히나 마을 사람들이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던 서해용왕지위비가 있는 것이 독특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암자를 나서면 미당이 노래하던 그곳, 바로 질마재다.


코끝 찡한 솔바람 그리워 오르는 고개, 질마재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삶의 애환이 깃든 질마재는 정감어린 고창의 옛길이다

밤이면 당산의 느티나뭇골에서 밤새워 울던 소쩍새들의 서럽던 울음소리가 아직도 내 뼛 속에는 배어있다
미당이 회고했듯이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질마재는 소요산 자락을 넘나드는 야트막한 고개다. 질마재라는 말은 소나 말의 안장을 뜻하는 길마의 사투리. 1km남짓에 이르는 옛길인 질마재는 미당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길을 떠날 때도,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진마마을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잡은 해산물이나 소금 등을 팔러 나갈 때도 넘던 고개이다. 등짐 가득 보따리 짊어진 아버지가 문 곁에서 기다릴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며 넘나들었을 그 곳. 질마재 고개를 넘나들이 하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있는지 미당의 시집을 읽지 않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질마재는 좁지만 높고 험한 길은 아니다. 쉬엄쉬엄 걸으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가만 발걸음을 멈추곤 국화꽃향기에 취해도 보고, 날아다니는 나비의 춤사위에도 시선을 빼앗겨보고, 지저귀는 산새소리에 콧노래도 불러보며 깊어가는 가을 향취에 빠져보는 거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질마재의 고갯마루.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방이 시원하다. 고개에는 무거운 소금을 지고 험한 산길을 오르던 이들에게 쉼터가 되어주었던 소금샘이 있다. 옹달샘이기도 질마샘은 소금장수들이 밥을 지어 허기를 채우고, 목을 축였던 곳이다. 그 옆에는 소금장수들이 돌아오는 길에도 안녕하길 기원하는 서낭나무도 서 있다.


누이의 얼굴 고운 꽃으로 피어난 국화마을


마을 담장 가득 국화 옆에서 속 누이들의 수줍은 미소와 향기로운 국화꽃들로 채워져있다


질마재 아래에는 국화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이름도 고운 돋음별마을이 자리해있다. 이름보다 더 고운 건 국화꽃으로 뒤덮인 마을의 풍경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라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를 시작으로 마을에는 올망졸망한 수천 송이의 들국화와 그리운 누이의 얼굴이 무려 1km나 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미당의 ‘국화 옆에서’ 가 눈앞에 그려질 만하다. 벽화뿐 아니다. 이름처럼 가을이면 300억 송이의 국화가 피어나 국화 그림과 함께 마을 가득 물결친다. 꽃보다 아름다운 게 사람이라고 했던가. 국화마을에는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의 얼굴도 벽 위로 피어났다. 벽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돋음별마을사람들이라고. 마을은 얼마 전 어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마을 지척에는미당의 생가가 있는 선운리 진마마을이 있는데 옛 선운초등학교를 개조하여 만든 미당시문학관이 눈길을 끈다.

오감으로 느끼는 미당의 시심, 시문학관과 생가


위 왼쪽 : 폐교를 개조한 미당시문학관의 모습, 위 오른쪽 : 진마마을 가득 피어난 국화꽃밭, 아래 : 미당시문학관 내부

미당이 남긴 시구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분위기의 미당시문학관. 형형색색으로 피어난 국화꽃들이 찾아온 이들을 먼저 반겨준다. 미당의 시문학관에는 미당의 육필원고와 작품집, 살아생전의 애장품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고인이 남긴 유품들을 어루만지며 시세계에 빠져도 좋을 곳이다. 시문학관에서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할 포인트가 있다. 바로 건물 6층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이곳에선 바다에 닿은 선운리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미당의 아름다운 글귀들은 아마도 이곳의 풍경을 보고자란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경이 좋다.


미당이 나고 자란 미당생가. 미당의 바람과도 만날 수 있다

더 이상 배가 드나들지 않은 옛 나루터인 좌치나루터


시문학관 바로 지척에는 미당의 생가도 있다. 초가지붕에 황토로 지어진 생가는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는데, 이 곳은 미당이 어린 시절을 회고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곳이다. 마당에 앉아있노라면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 이라고 노래했던 미당의 바람과도 만날 수 있다. 사계절 언제 찾아가도 정감어린 풍경이지만, 특히나 가을철에는 노랗고 하얀 국화꽃이 생가 곳곳에 피어 있어 미당 시심의 발원지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생가 외에도 질마재 넘어가는 길에는 미당의 시속에 나오는 도깨비집과 웃돔샘 등이 있다. 진마마을 사람들이 장에 갈 때 들고나던 곳인 좌치나루터도 미당 생가 아래 있다. 이곳을 통해 사람들은 인천강을 건너고 질마재를 넘어 저녁 찬거리를 장만했단다. 허나 배가 다니던 분주함도, 나루터에 있어야 할 뱃사공은 없고 나룻배 한 척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인천강을 넘어 짭짤한 소금 기운이 느껴지는 바다로 나아간다. 10km의 해안선을 따라 널찍한 갯벌이 눈 안에 가득 잡힌다.


생명 움트고, 동심 펄떡이는 하전갯벌마을


바다보다 더 넓은 갯벌을 품은 하전마을. 드넓은 갯벌을 누비며 조개 잡는 재미에 빠져보자


국내 최대 바지락 생산지이자,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선정된 하전갯벌마을에 다다랐음이다. 하전마을은 썰물 때 드러나는 갯벌이 1200ha나 펼쳐져 또 다른 잿빛 바다를 연상케 한다. 또한 이 곳 갯벌은 월드컵 잔디구장처럼 푹신푹신할 뿐 발이 전혀 빠지지 않고 촉감이 또한 좋다. 하전 갯벌마을에 가면 명물인 ‘갯벌택시’ 를 타고 바지락 캐기 체험도 할 수 있다. 갯벌택시로 불리는 이 경운기는 질퍽한 갯벌 위나 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른 곳도 거침없이 씽씽 달리는 전천후 택시. 경운기를 타고 탁 트인 갯벌을 달리다보면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갯벌을 가로지르며 경운기 한 대가 달리자 갯벌체험 온 아이들이 꺅 소리를 낸다. 구르고 뛰놀아 아이들의 옷이 진흙투성이가 되도 혼내는 이가 아무도 없다. 아이들의 동심이 갯벌만큼이나 넓어졌음을 알기 때문이다. 갯벌을 지나면 백제시대부터 재래소금 생산지로 알려진 검당포가 나온다. 이곳에는 지금도 소금을 구웠던 벌막과 소금샘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소금전시관까지 세워져 옛 소금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어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길 중 4코스인 선운사길을 찾는다면 나뭇잎마다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단풍의 아름다움과 함께 천년고찰의 신비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잠깐, 선운사의 가을 풍경도 놓치지 마세요!>




* 고인돌과 질마재 따라 100리길 별미


▷ 복분자주와 풍천장어

풍천이 고창의 어느 지역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풍천장어 하면 고창이다. 풍천장어란 바닷물과 강물이 합쳐지는 곳에서 잡은 장어를 말한다. 탄력이 있어 씹히는 맛이 쫄깃하고 기름기가 적어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여기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선운사 지역의 복분자는 붉은 빛과 단맛이 강해 최상으로 친다. 풍천장어와 함께 복분자는 고창의 스태미나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장어 맛집은 풍천만가(063-563-3420), 신덕식당(063-562-1533), 풍천가든(063-562-7520), 연기식당(063-562-1537)등이 있다.


<여행 팁>

◎ 질마재 가는 방법

* 고창I.C 고창I.C → 아산방면(우회전)→ 주곡교차로(직진1분) → 고인돌교차로(직진2분) → 고인돌박물관(고인돌유적) 정읍I.C 정읍I.C → 고창방면(좌회전) → 흥덕 제하사거리(고창방면 좌회전 20분) → 성두교차로(아산방면 우회전10분) → 주곡교차로(직진3분) → 고인돌교차로(직진2분) → 고인돌박물관(고인돌유적) 백양사I.C 백양사I.C → 고창방면(좌회전) → 그랜드모텔 삼거리(직진20분) → 월곡교차로(정읍방면 우회전2분) → 주곡교차로(직진5분) → 고인돌교차로(직진2분) → 고인돌박물관(고인돌유적)

◎ 질마재길 코스 안내

* 코스 : 연기마을 입구→①분청사기요지→산림경영숲쉼터→②소요사→③질마재→④국화마을→⑤미당시문학관→⑥미당생가→좌치나루터→⑦하전갯벌 학습체험장→소금샘→검단소금전시관

* 총 거리 : 14.7km/소요시간 4시간 정도 소요(시작점과 도착점이 같은 순환형 코스)

◎ 여행문의 : 고창군 문화관광과 063) 560-2457~8

☞ 질마재길 자세히 보기


-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U-투어정보팀 손은덕 취재기자(tos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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