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시계공 전2권
사회 각 분야에서 ‘융합’과 ‘통섭’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 단어의 모범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융합’이라면 기대를 해도 손해 볼 것 같지는 않다.
소설가 김탁환과 신경 물리학자
정재승이 함께 소설을 썼다. 제목은 『눈먼 시계공』. 2049년 서울을 배경으로, 죽은 자의 뇌에서 단기 기억을 추출해 영상을 재현하여 범죄를 수사하는 특별 수사대와 로봇 격투기 대회를 통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소설이다. 『눈먼 시계공』의 출간을 맞아 5월 10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두 저자분의 인사말을 먼저 듣겠습니다.
김탁환: 3년 정도 넘게 준비했습니다. 1년 정도
과학 소설을 쓴다는 것은 과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상상력이 행복하게 결합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번에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하겠지만, 앞으로의 작업들에도 많이 주목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소설의 모티브가 있었다면?
정재승: 2004년도에 우연히 대전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떠올랐던 이야기입니다. 1990년대 초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두 연인이 서울대공원에 갔는데, 사랑을 증명한다며 남자가 사자 우리 안으로 던진 손수건을 가지러 들어간 사건이었죠. 멀리 있던 사자는 순식간에 남자에게 달려들어서 10분 이상의 격투 끝에 남자가 사망했어요. 나중에 남자를 부검해보니 남자 입 속에서 사자의 갈기털이 발견되었다고 해요. 남자도 살기 위해 사자의 목을 물어뜯었던 것이죠. 그 사건을 보면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생존 본능이란 어떻게 인간에게 부여된 것일까 하는 물음을 갖게 되었어요. 생존 본능을 뇌에 코딩해서 넣을 수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을요.
제목인 『눈먼 시계공』은 어떤 의미입니까?
정재승: 제목은 리처드 도킨스의 걸작 『눈먼 시계공』에서 따왔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자연이란 어떤 신의 의도나 설계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자연선택이라는 맹목적인 눈먼 시계공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인간의 느낌, 감정, 욕망, 자의식 같은 것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뇌과학을 활용하려는 어리석은 뇌과학자들을 눈먼 시계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책 속에서 등장하는 격투기 로봇 ‘글라슈트’는 원래 독일의 명품시계입니다. ‘글라슈트’를 만든 로봇공학자들이 바로 ‘눈먼 시계공’인 것이죠.
두 분의 공동작업으로 소설이 나왔는데, 구체적인 집필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탁환: 쓰기 전에 ‘절대로 이렇게 하지 말자’ 했던 원칙이 있습니다. ‘융합’과 관련된 프로젝트들이, 결국은 내용을 반씩 갈라서 각자 완성하고 짜맞추기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문장 단위, 단어 단위로 크로스로 체크했습니다. 인문학과 과학적 지식이 문장 하나하나에 녹아들게 하기 위해서요. 융합의 정도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죠. 그래서 둘이서 작업을 하는데 작업 시간이 반으로 줄지 않고 오히려 4배 정도 시간이 더 들었습니다.
제가 상상력을 펼쳐놓으면,
정재승: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이기를 바랬습니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까 김탁환 선생님이 쓴 부분은 제가 쓴 것 같고, 내가 쓴 부분은 오히려 낯설더라구요. 이런 작업은 다른 사람들은 쉽게 못 할 듯해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전문 분야나 세계관에 대한 이해, 그리고 상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거든요. 과학자는 과학적 엄밀성을 중요시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서로의 의견이 거부당하는 경험이 되풀이되면 작업이 힘들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김탁환 선생님은 제 제안을 대부분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었습니다.
문체의 경우는, 문체가 들쭉날쭉하면 통일성이 없으니 최대한 제가 김탁환 선생님의 문체에 맞추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하기 힘든 것은 책 속에서 일기, 칼럼 등의 형식으로 바꿔서 녹여냈습니다. 김탁환 선생님은, 역사 소설을 많이 쓰셔서 인지 초고에 형사가 범인에게 “계서시오!”라고 말하고 있어서(웃음), 어떻게 말씀드릴까 조심스러웠지만 잘 받아들이셨어요. 나중에는 저보다 더 과격한 SF소설 문체로 바뀌셔서, 독자들은 김 선생님의 문체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어가 어려워서 소설이 어렵지는 않은지? 재미있게 읽을 방법을 알려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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