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혼자가 아닌 걸 알았다.
해마다 연말이면 연하장을 쓴다.
쓰고 있다 보면 정말 한해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났고, 그들이 나에게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준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 잘나서 한해를 잘 산 것같아도 결국 나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또 한해를 살아 낸 것을 깨닫는다.
의무적인 연하장에서 정말 꼭 드리고 싶은 연하장그리고연하장을 쓰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 쓰던 펜을 잠시 멈추는 시간들..... 또 마음만 있지 정작 가사의 마음을 써서 보내지 못하는 사람까지....
새해 들어서 나는 레몬처럼 상큼하게 시작을 하고 싶다.
겨울내 눈이 날리는 창가에서 따뜻한 유자차를 마시면서 환하고 노란 유자처럼 맑고 싱그럽고 싶다. 내가 설레이는 봄을 느끼는 꽃은 후레지아꽃이다 꽃은 예쁘지 않지만 그향기만은 최고 인 것 같다. 처녀시절 그꽃 향기에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는데 이제 생을 반절 살고 보니 그 싱그러움이 더욱 부럽다.
이제 곧 아들의 졸업식이 될 것이고, 나는 다시 꽃을 사지만 그 꽃은 아들에게 전해는 향기일 것이다. 사계절 내내꽃 향기를 맡으며살고 싶었는데 너무 좁은 아파트에서 화분을 기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한다. 지난 겨울내 감기로 꽃을 집안으로 들여 놓지를 못했는데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날에서야 혹한을 피해방에 들였는데 그 꽃이 지금 붉은 꽃송이로 피어났다.
그동안 3년동안 잎만 부성하여 여자로 말하면 석녀 아젤리아인 줄 알았는데 그 아젤리아가 기도손처럼 꽃망울을 터트리고, 지난 여름 죽을 것 같아 열심히 돌보던 시크라멘도 붉은 꽃을 피우고, 사랑초도 엷은 보라빛꽃이 피어났다. 내가 무심하고 돌보지 않아도 꽃들은 지 살궁리를 했던 가 보다.
어쩌면 자연은 그 천성대로 살아지는 것을 인간인 내가 비료를주고물을 주고 해빛을 더 주거나 조절함으로 오히려 꽃의 천성을 거스린 것은 아닐까? 자식을 기르는 일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아들이 어떤 일을 하든 많이 웃어 주고, 많이격려해 주고 공부를 못해도 사랑을 더 많이 주려고 한다.
지나친 기대가 아이를 위축시키고, 지나친 잣대가 아이를 누른다면 아이는 숨도 쉬지 못할 것이다. 아는 지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래, 당신 딴엔 열심히 살았지만 지금 당신 자신한테 만족해요, 그래서 그 자리예요?" 라고 나에게 되 물었다. 처음 들을 때는 굉장히 기분이 나빴지만 사실 이 말을 한 그녀는 사회적으로도 가족적으로도 상위 5%안의 인물이기에 나는 자존심은 몹시 상했지만 내 머리에 오래도록 교훈이 되었다.
그래, 내려 놓자!
무엇을 바라고 꿈꾸는가?
이 허망하고 허황된 세상에서 나 조차 부화뇌동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나는 마라토너가 아니다.
나는 길을 떠난 나그네이다.
그 길의 끝이 올 때에 나는 검허히 한 생을 감사히 살아왔음을기도하리라.
붉은 꽃을 보면서 다시 내 아들을 바라다 본다.
아이는 오늘도 키를 재어 봐 달란다.
키가 자라듯 아이가 품은 자신만의 세상도 자라기를 기도하면서 나는 나를 위로해 주는
내 아이 같은 화분 주변에서 짧은 행복감에 젖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