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진

전남 광주/국립518광주 민주묘지

mama77 2023. 11. 28. 10:10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갔다. 나의 경우 광주에 가면 금남로와 도청 앞까지는  갔지만 선뜻 민주묘지까지 방문을 하지 못했다. 대학시절 불의에 떨고 공부를 할 때가 아니라면서 나에게 회색인이 되지 말라고 소리쳤던 친구들을 외면하고 나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던 나로서는 그 묘역을 찾는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이 보다 어리고 또 내 나이 또래가 그리고 부부가 같이 합장된 묘역의 비문을 읽으면서 무섭고 공포스러웠던 그 시절이 주마등 같이 스쳐 지나갔다. 5.18기념관의 동영상을 감상하고 기념관을 둘러 보았다. 눈물의 물길을 바라보면서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그리고 비닐에 싸여 죽어간 영혼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송함을 느낀다.

1980년 5월 18일

5ㆍ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이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후 권력누수의 기간에 불법적으로 집권을 획책하는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을 거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여 일어난 시민봉기다.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이 제정되기전(2002. 1. 26)까지는 5ㆍ18민중항쟁으로 명칭 되어져서 오늘날에도 5ㆍ18이란 용어가 더 친숙하게 우리에게는 다가온다.

5ㆍ18은 깨어 있는 민중들이 민주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나아가 불의의 독재를 거부하는 민주화운동이 합법성과 정당성을 갖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그리고 5ㆍ18민중항쟁은 유신체제를 계승한 “제5공화국”정권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여 끝내 그 체제를 붕괴시키고 문민정부를 탄생시켰으며 50년만의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룩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결국 5ㆍ18은 과거의 역사적인 민중항쟁을 통해 표출되었던 자주.민주.통일의 전통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민주주의 발전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 민권투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묘역에는 762명의 사람들이 묻혀 있다고 한다. 아직도 실종과 찾지 못한 시신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어떻게 군인이 시민을 향해 총구를 날릴 수가 있단 말인가?

한동안 바라보지 않고 외면하였던 역사의 순간 속에 있었던 사람들을 다시 기억해 주기 위해 묘역과 비석과 같이 있는 흑백사진의 주인공들을 만나 보았다.

 

2층 전시장에 푸른 물길이 있다. 그 물길이 눈물이 되어 1층 천장에서 방울방울 떨어져 내려 온다. 너무나 갑자기 당한 설움의 눈물일가? 아니면 국가 권력에 대한 믿음에 대한 배신감에 흘리는 눈물일까? 이런 눈물이 다시는 흘려 내리지 않아야 한다. 이들의 희생에 울분해 민주화를 위해 수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사회가 되어 있다. 

묘지 묵상을 마지고 잠시 차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있는데 단체 방문객의 합동 묵념이 이어지고 님을 위한 행진곡이 묘지들녁에 울려 퍼진다. 젊은 시절 이 노래는 울분을 달래기 위해 불렀고, 친구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 길가로 나섰다. 19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이 노래가 뇌리에 조건반사처럼 각인 되어 있을 것이다. 빼앗긴 것에 대한 울분과 함성을 말이다.

 

아무리 역사의 진실을 틀어 막는다 해도 진실은 영원하다. 그 쳐연했던 현장과 사람들의 선혈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다,

5.18 기념탑 앞쪽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어 안내문을 보니 정이품 소나무 아들 나무를 이곳에 심었다고 한다. 이 아들 나무가 정이품처럼 의연하게 자라기를 기도하면서 역사의 현장에서 부그러움과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의 탐방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