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일기

나무 가지를 잘라 내는 것은 꽃을 보기 위함이다.

mama77 2023. 3. 11. 10:20


새봄 맞이를 했다. 지난 금요일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푹 쉬었다.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다보니 오늘 아침 마음도 산듯해지고 한결 몸도 가벼워진 것 같다. 내가 변한 것은 없는데 아침부터 내 마음이 새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동안 짐안에 놓았던 화분들을 혼힘을 다해 끙끙거리면서 
집 밖 테라스에 옮겼다.  묵은  잎새를 다듬고 열지 않던 창문도 활짝 열어 놓으니 겨우내 답답했던 무거움이 사라진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동네를 찾아 오는 꽃을 파는 아저씨가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제라늄, 미니 철쭉 그리고 다육이를 길에 펼쳐 놓고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다. 나는 카페에서 돌아 오는 길에  분홍색 철죽을 샀다. 해마다 봄이면 꽃을 사는데 꽃을 살때 기분이 참 좋다. 나는 매일 누군가가 나에게 꽃을 준다면 그가 아무리 바보일지라도 그를 좋아 할 것 같다. 꽃을 보고 싫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물론 내 시아버지가 그런 분이었다. 아마도 전국을 돌아 다니는 군인으로 그리고 전쟁을 겪은 세대라서 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던 것 같다. 꽃도 마음이 평안해야 바라 볼 수 있는 것 같다.

 

최근 나는 "올해는 어떨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느라 몸살이 났다. 나에게 시간이 많아지면 하고 싶은 것이 많을 줄 알았다. 그런데 고작 8개월을 보낸 소감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지라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하고 있다. 밤길을 가다 등불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오늘 묵은 가지를 잘라내면서 나는 내 자신의 생각들의 묵은 가지치기를 하였다. 마치 겨울 나목처럼 내 자신의 잡다한 생각들을 잘라내고 잘라내었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보였다. 나에게 주어진 멋진 시간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무언가 커리큘럼이 있어서 목표지향적으로 살아 온 삶과 다른 방식의 삶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내가 방향을 정하고 내가 그 길을 자발적으로 걸어가야 한다. 물론 같이 가는 동행이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화분이 한 개만 있는 것보다 두어개 나란히 있을 때 더 예뻐 보이듯이 말이다. 

 

오늘 상반기 교육을 받을 계획과 내가 집에서 공부해야 것을 정했다. 그리고 빈 시간을 어떻게 꾸며 나갈지도 정했다. 오늘 아침 신문의 컬럼을 읽으면서 나는 위안을 얻고 다시 힘이 났다. 새봄을 맞이할 용기도 다시 생겼다. 참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