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탓인가, 좀 우울하다.
마음의 우울이 갑자기 어제 저녁에 찾아왔다. 눈물을 펑펑 흘리고 싶고, 그 누군가가 나를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해 따귀라도 한대 맞고 싶은 심정이다. 신뢰감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며칠 전에 아는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너무나 사적인 생각을 전체인 양 그리고 오랫동안 해 온 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데 그 사람이 가지 않아야 할 선까지 말을 하고 보니 나는 그 사람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순수하게 시작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순수성은 사라지고 목적성으로 달겨 든다. 나는 조금 조력하고 지원을 한다고 했는데 약간의 배신감을 느낀다. 작은 미미한 것으로 자기 그룹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나에게 원망을 늘어놓는다. 전화로 하는 이야기로 오해가 생길까 봐서 다음 날자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고 그 사람의 주장을 잠시 멈추게 했지만 한 주 내내 내 머리를 빙빙 돌고 있다.
어제는 걸어서 다이소를 찾았다. 오랫동안 사려던 꽃 영양제를 사고 근처에서 시장을 보았다. 사람들 속에서 나는 고독을 느낀다. 몸과 영혼이 파 김치가 되어 있는데 설거지통에 그릇이 쌓여 있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나를 바라다보고 있는 식구들. 참 지쳐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날이지만 나는 다시 정신을 추스르고 저녁 준비를 한다. 돼지고기 구이와 상추와 깻잎을 씻고, 김치찌게도 만든다. 음식 익어가는 소리가 나의 고독을 잊게 한다. 말없이 밥을 먹고 다시 빨래 세탁기를 돌리고 나니 10시가 되었다. 고된 전투같은 생활이다.
나도 느긋하게 브런치를 먹은 전업주부가 되어 보고 싶다. 나도 그 누군가가 나를 아껴주고 위로해 주는 돌봄을 받고 싶다. 매일매일 걱정과 근심 그리고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를 반복해서 하는 일을 하면서 간간히 내가 만나는 분들의 넋두리를 듣다 보면 아마도 나는 늘 양보하고 늘 인내하고 늘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다. 나는 소망한다, 내가 노년에는 정말 착한 사람으로 살기를 바란다. 올해 들어서 나 자신의 부끄러움으로 인해 내 삶이 많이 위축되고 맘적으로 많이 조심스럽다.
매일매일 이메일을 통한 제출과 요청사항들이 줄을 지고 서 있다. 과거에 비하면 너무 빠른 업무 체계로 정신은 피폐하고 여유로움이나 인간적은 구석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주 만나던 사람들과 만남이 없다 보니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쏟아 내고 위로받고 답답함을 해소하기가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