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염색하는 동안
예전에 나는 가끔 염색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묻던 지금의 내 또래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때 나는 30대로 "뭘, 염색을 하세요?, 그냥 자연스러운게 더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말하곤 했다.
정작 내가 오십이 되고 보니 염색을 하기에도 염색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어중간한 나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흰머리가 히끗보이면 나도 모르게 살짝 뽑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과거 나이 먹은 사람을 대접하던 시대에는 아마도 흰머리는 존경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빠른 정보사회에서 늙어감은 어찌 보면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TV의 가족드라마에서 노인이나 50대를 묘사하는 부분이 얼마나 있을까? 더구나 50대여자의 내면 갈등은 모두 가족에 얽혀 있는 것으로만 묘사되고 있다. 심지어는 젊은 아들과 딸에 휩쓸려 자신의 영역은 실종 상태의 전업주부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50대여성도 자신의 미를 위해 애쓰고 있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있고, 아름답거나 탐나는 대상을 보면 이성을 잃을 만큼 열정도 가지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대의 중심에서 자꾸 자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염색을 하지 않아야 될 나이는 언제일까? 내 자신이 나에게 "이젠 됐어. 그만 염색을 해."라고 나를 또닥일 날이 언제일까? 가까운 지인 중에 흰머리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이 계시다.
흰머리가 몹시 잘 어울렸던전광모님처럼 멋지게 어울리는 분이다. 그런 그 선배가 참 존경스럽고 보기 좋다. 있는 그래로 스스럼없이 살아가는 그 자신감이 참 부럽다. 나이를 먹어가며 부부가 서로 염색을 해 주는 것은 마치 원숭이들이 애정을 표현하는 행위로 서로의 몸의 벌레를 잡아주는 것과 같다고 본다.
서로 염색을 해 주면서 나이 들어감을 느끼고, 배워가면서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음을 깨닫게 해주는 행위라고 생각된다. 머리카락이 있음은 아직 가림과 드러냄을 동반하는 것으로 가끔 절집에 스님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인가를 깨닫게 된다.
절집에서 헤어 스타일에 있어 노인과 사미승과의 차이는 없다. 그러나 깨달음이나 명상 또는 도에 있어서는 분명한 것은 노승과 사미승의 차이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오래 전 한국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라는 영화에서 여배우 강수연이 삭발을 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 삭발식 이후 인터뷰에서 강수연은
"귓가에 스치는 바람소리가 참 좋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뜻을 몰라 그 당시 나는 언젠가 나도 저 여배우의 말처럼 그 뜻을 이해하고 싶다는 짧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먼 후일 내가 항암치료로 머리털을 모두 잃을 것이 예측되는 때에 나는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여 주인공처럼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면도로 밀었다. 머리털하다 없는 내가 거울앞에 앉아 있으니그 모습이 정말 낯설고 이상했다. 그리고 머리털을 없애
고 아름다워 보이는 사람은 몇 안될 것이라는 것도 깊이 깨달았다.
지금 염색을 하면서 주마등처럼 스치는 생각들로 기분이 묘하다.
삼단 같은 머리채로 그 아름다움을 펼치던 여인네들이 역사 속에 묻치듯 나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흙으로 돌아가야 될 것이다.
너무 내 나이를 숨기려고 하지 말자. 그리고 내 나이에 걸 맞는 삶을 살아가자.
염색할 머리카락이 있음이 이 얼마나 행복한가? 이 순간을 즐기자. 미리 염려하지도 말고 먼 후일을 걱정하지도 말자. 차라리 지금 염색을 하고 있는 이 순간을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