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강에서 태고의 신비를 느끼다
조식을 마친 후 걸어서 격포 채석강으로 향했다. 대명리조트에서 차로 3분거리에 있다. 그러니까 내가 이른 아침에 걸었던 닭이이봉 전망대 아래가 격포인 것이다. 아침에 멀리 바라다 본 섬이 좀더 내 시야에 가까이 온 것이다.
마침 수학여행을 왔는지 한 무리의 청소년 아이들이 보인다. 문화해설사 분의 이야기가 들려 나도 묘하게 깍여 있는 바위에 걸터 앉아서 잠시 경청을 하였다.
이곳 지형은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라고 한다.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하여 채석강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의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채석강에서 해수욕장 건너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붉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적벽강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 관하의 격포진(格浦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약 7천만년 전)에 퇴적한 퇴적암의 성층으로 채석강은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지면 들어갈 수 있는데, 간조 때는 물 빠진 퇴적암층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바다생물과 해식동굴의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간조 때 해식동굴에서 바라보는 낙조와 노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채석강의 절벽과 해수면 부근은 검은색의 이암과 실트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쪽은 층리가 다소 두꺼운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곳에 얇은 역암층이 관찰된다. 반면 퇴적암 구조상 채석강의 아래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봉화봉 남쪽은 큰 바위들이 끼어있는 역암층이 두껍게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래로 갈수록 입자가 크고 위로 갈수록 입자가 작아지는 것이다. 이런 퇴적구조로 볼 때 입자가 크고 불규칙한 역암층이 쌓인 환경은 수심이 깊고 경사가 급한 호수 속이었으며, 층의 두께로 볼 때 그 시기는 비교적 길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입자가 고운 이암과 실트암이 쌓일때는 비교적 평온한 수중삼각주 평원이었다. 이런 시기는 상대적으로 짧았을 것이라는 전승수 교수(전남대 지질학)의 분석이 있다. 한편 격포항 방파제에는 채석강 절벽의 사암 사이에 모난 돌로 이뤄진 역암층이 끼여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다른 퇴적암 절벽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는 입체적인 구조로 봐 호수 속 급경사면에 불안정하게 쌓여있던 자갈이나 바위들이 물 속에서 사태를 일으켜 모래가 쌓여있던 더 깊은 호수 속으로 이동해 왔거나 경사가 급한 호수 속의 작은 물길을 따라 실려내려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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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기 는 1억 3,500년전부터 6,500만년전의 기간으로 백악기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해침이 일어난 시기이다. 초기에는 온난하고 습윤하였고, 세계적으로 실물군의 분초가 균일했다. 파충류와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식물의 분포를 모아 백악기에는 몽골, 그리랜드, 알래스카까지도 따뜻했다고 한다.
공룡, 어룡, 익수룡등의 대형 파충류가 번성하였으나 말기에는 암모나이트가 갑자기 멸망하였다. 백악기는 중생대에서 신생대의 생물군의 변천시기로 중생대의 대표적인 동물의 전멸시기이도 하다, 해생동물에는 암모나이트가 번성하였고, 백악기 말기에는 벨름나이트가 급속히 전멸되자 이상하게 말린것과 봉합선이 반대로 단순한 것이 나타나게 되었다. 어류에서는 현재 물고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골어시대가 된다. 백악기 말의 멸종사건은 해양에서 공중에 이르기가지 많은 대형 척추동물에게 유례없었던 시련기로 다가왔다. 많은 바다 파충류와 익룡이 사라졌고, 위기를 넘기고 신생대까지 살아남은 공룡의 수는 지극히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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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상력으로는 알 수도 가늠할 수 없는 역사의 억겁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채석강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언인지 모르지만 정말 저절로 그 아름다움에 탄성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어젠가 구리시를 지날때 만났던 우석현 자연사박물관이 더오른다. 도대체 무엇이 한 사람이 30만점의 화석을 모아서 박물관을 만드는 힘을 불어 넣어 주었을까?
아마도 100년을 살다가는 인간이 삶으로 다 알 수 없는 세계를 보여주는 자연을 통해 태고의 신비스런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 시간의 미스테리를 쫓아가다 보니 그런 수 많은 화석들과 교우를 하지 않았을가 싶다.
나는가끔 여행지에서 작은 돌을 주어 오기도 하는데 오늘 만큼은 더 더욱 격포 채석강의 작은 조약돌을 손에 들게 된다. 그 작은 돌에는 커다란 바위가 파도에 깎이고 깎인 흔적이요, 파도의 쉼 없는 노래가 숨어 있기에 특히 바닷가에서 가져온 돌은 나 자신에게 인내와 마음의 부질없는 잡 생각을 떨쳐 버리는데 큰 힘이 된다. 그래서 내 책상 위에는 작은 돌들이 있다 간혹 마음이 산란할 때 잠시 그 돌을 마지고 있으면 이 수 억겁의 시간 속에 살아 남아 나에게 위안을 주는 작은 자갈이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울 때가 종종 있다.
젊은 날에 이 바닷가에 들러 바닷가 근처 횟집에서 소중에 회를 입안 가득 물고 히히락락했다면 이제 나이를 들어 채석강을 찾으니 바위에 쓰여진 파도의 지난한 몸동작이 상상이 된다. 아마도 인간이 살았고, 공룡이 살았고, 연인이 있었고, 어부가 고기를 잡았고, 또 어부의 아들이 배를 탔고, 또 어부의 아들이 고기를 잡았고, 또 그 아들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첫 새벽을 가로 질렀던 그 수 많았던 시간을 흐름 속의 일을 이 바위는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예전에 미처 보지 못한 것은 커다란 바위 안에 작은 돌들이 박혀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아마도 그 돌이 파도에 의해 깎이고 스치고 하면서 별개의 자갈로 만들어 졌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오늘 아침 걸었던 격포해수욕장의 유리같이 가는 모래알의 전신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바위 속의 자갈일 것이다. 볼래의 모습을 잃고 마치 처음 부터 모래였던 것만 같은 해변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참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나는 언제쯤이나 이런 태고의 신비처럼 내 자신을 깎고, 깎아서 저 반짝이는 모래알처럼 겸손애 질수 있을까?
채석강에서 영겁의 시간 여행을 마치고 잠에서 깨어나듯 채석강 입구로 나오니 많은 회집과 건어물상이 보인다. 내가 첫 방문하던 1980년대에는 이곳은 진정한 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조용한 해안선에 따라 검은 돌의 울둥불둥함이 신비롭고 전설처럼 이태백이가 바로 나와서 시를 읊을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관광지로 잘 꾸미어져 있다. 인간들의 이기심을 보듯이 해안선 가까이 콘도 군락이 그다지 예쁜 눈으로 바라봐 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의 태고 여행처럼 앞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인들은 익룡이 날고, 심한 침이 있던 중생대 백악기를 알고 방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